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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은 철도 공사차량, 새차 둔갑… “인명사고 우려”

입력 | 2022-04-04 03:00:00

[사건 줌인]
수명 다한 중고 모터카 헐값 사들여 일부 부품 바꾸고 신차 편법 등록
20년간 정밀진단 피해… 안전 구멍
업계 “차체 약해 큰 사고 가능성”
41개 업체 중 21곳 차량서 문제점…국토부, 1곳 등록말소 등 그쳐




철도궤도공사업체 C사가 2002년 사업자 등록 당시 제출한 모터카 사진. 1977년 일본에서 제작된 것이다. 국민의힘 김희국 의원실 제공

사용 연한이 지난 불용품(不用品·쓰지 못하게 됐거나 쓰지 않는 물품)을 사용한 ‘모터카’들이 마치 새것인 양 편법으로 등록돼 철도 공사 현장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모터카는 철도 선로 보수 등을 할 때 장비나 자재를 옮기는 궤도 차량이다. 인명 사고 발생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동아일보 취재 결과 철도궤도공사업체 A사는 최근 20년 넘게 사용한 모터카를 내세워 한국철도공사(코레일)로부터 계약을 따낸 후 공사를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A사에 모터카를 판매한 철도차량 수리업자 B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해당 모터카가 “10여 년 전 서울교통공사 등으로부터 헐값에 사들인 불용품 중 하나”라며 매입 당시 이미 20년 넘게 사용된 것임을 시사했다.

B 씨는 사들인 모터카를 수리한 뒤 국토교통부가 성능시험기관으로 지정한 민간업체에 “2014년 제조됐다”며 테스트를 받았다. 법에 따르면 제조 20년 후부터 3∼5년마다 정밀 진단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모터카의 경우 2034년까지 정밀 진단을 받을 필요가 없다. 이 모터카는 이후 2017년 약 2억 원에 공사업체에 팔렸고 여러 차례 재판매되며 철도 공사에 투입되고 있다.

B 씨는 “새 모터카는 가격이 대당 5억 원이 넘는데 그 가격(2억 원)에 팔았겠나”라며 “낙찰받은 불용품으로 만들었으니 중고 값에 판 것이다. (판 건) 전부 중고차”라고 했다.

지난해 국토부 조사 결과 C공사업체의 경우 1977년 일본에서 제조된 모터카를 2002년 수리업체로부터 1100만 원에 산 뒤 철도궤도공사사업자 자격을 따내 공사를 해왔다. 이 모터카는 이후 다른 두 업체에 차례로 소유권이 넘어가며 해당 업체들이 사업 자격을 획득하는 데 활용됐다. 한 철도 공사업계 관계자는 “일부 업자들이 수리된 중고인 걸 알면서도 사들여 정밀 진단 없이 사용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철도 공사 현장의 사고 발생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5년 경력의 한 철도차량 제작자는 “수년 동안 차체에 반복해서 가해진 충격은 정비를 통해 회복될 수 없다”며 “차체가 약해진 상태에서 사고가 나면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김희국 의원실이 입수한 국토부의 ‘철도궤도공사 업체(41곳) 모터카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21곳 이상에서 제조 시기 조작, 장비 노후, 이중 등록 등의 문제가 발견됐다. 그러나 국토부의 행정 처분은 건설업 등록 말소 1곳, 영업정지 3곳에 그쳤다. 철도 관련 공공기관에서 퇴직한 한 관계자는 “(철도) 업계가 좁은 탓에 규제와 제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