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예나 지금이나 죄없는 민간인들에게 커다란 고통을 안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특히 러시아군의 민간인에 대한 잔인함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3일(현지시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부터 3월 25일까지 러시아군에 점령돼 있던 우크라이나 북동부 인구 1만9000여명의 작은 도시 트로스티야네츠의 주민들이 겪은 참혹한 전쟁을 현지에서 전했다.
안치소에 있는 사망한 러시아군 3명 중 한명은 얼굴이 고통으로 이그러져 있었다. 한명은 다리에 파이프가 박혀 있었고 다른 한명은 슬리핑백에 담겨 있었다. 한달여 러시아군이 점령하면서 남긴 것은 이들 시신만이 아니다. 마을 건물 대부분이 파괴됐고 부서진 탱크가 흉물스럽게 남아 있으며 부러진 나무와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
예우도키야 코네바(57)은 “정말 침뱉고 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인도지원품 박스를 들고 빗속을 걷던 니나 이바니우나 판첸코(64)는 “이 끔찍한 해방을 원한 적이 없다. 다신 그들이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국경에서 30여km 떨어진 트로스티야네츠는 러시아군이 점령한 마을 주민들의 투쟁과 공포를 극명하게 전하는 곳이다. 마을을 차지하기 위한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사이의 교전으로 마을이 파괴되는 몇 주 동안 주민들은 지하실이나 어디든 숨어 지내야 했다.
지난 3월 29일 일부 전력이 처음 복구되면서 넋이 나간 주민들이 파편 속 마을을 돌아다녔다. 철도 노동자 빅토로 파노프는 파편에 부서진 철도역에서 불발 포탄과 수류탄을 치우고 있었다. 부서진 러시아 장갑차를 분해해 부품을 뜯어 내거나 기계를 고치려는 사람도 있었다.
마을 의사 올레나 볼코바(57)는 “탱크와 미사일 전쟁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된다. 누구를 향한 것이냐? 죄없는 시민들은?”이라고 했다. “정말 야만적”이라는 것이다.
파노프(37)는 “러시아군이 온 초기엔 우크라이나군이 잘 싸웠지만 중화기가 바닥난 뒤 소총밖에 없었다”고 했다. 러시아군의 키이우 공격이 우크라이나군의 강력한 저항에 막히면서 트로스티야네츠는 러시아군 주둔지가 됐다. 약 800명이 주둔해 마을 곳곳에 검문소를 세웠다.
주민들은 러시아군 초소를 지나려 하지 않았다. 초기 러시아군은 비교적 서글서글했다고 한다. 볼코바 의사는 “처음 온 러시아 연대는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그래서 ”좋다. 돕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거리 시신을 치우는 일이었다. 러시아군 점령동안 약 20명이 숨졌고 이중 10명이 총에 맞았다고 했다.
러시아군은 몇 차례 안전로를 만들어 시민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이 때 군에 나갈 수 있는 젊은 청년들이 다수 납치됐다.
점령되자마자 현지 경찰들은 제복을 벗고 사람들 속에 스며들었다. 우크라이나 국토방위군 소속인 사람들 일부는 마을 밖으로 빠져나가 게릴라 활동을 펴면서 러시아군대의 움직임을 우크라이나군에 알렸다. 마을에 남은 사람들은 러시아군의 추적을 피해 주민들을 도왔다. 경찰서장 볼로디미르 보가쵸프(53)는 ”점령 기간 내내 최선을 다하며 이 곳에 머물렀다“고 했다.
볼코바 의사는 ”그들은 뻔뻔하고 화가 나 있었다. 그들에겐 아무 말도 안통했다. 탈출로도 연 적이 없고 주택과 아파트를 수색하고 전화를 빼앗고 사람들을 납치했다. 주로 청년들인데 아직도 행방을 모른다“고 했다.
지난 3월 29일까지 경찰에 신고된 실종 건수는 15건이다. 안치소에는 러시아군인 3명 외에도 구석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볼코바 의사는 ”이 사람은 고문 당해 숨졌다. 손발이 묶여 있고 이빨이 모두 빠졌으며 얼굴 거의 전체가 망가졌다. 그들이 뭘 원했는지 이유는 모른다“고 했다.
3월 23일 마을 외곽에 도달한 우크라이나 93 기갑연대가 포격을 시작했다. 다음날 병원이 폭격당했다. 누가 공격했는지는 분명치 않았지만 주민들은 러시아가 쐈다고 했다. 병원은 러시아군이 점령한 기간 내내 운영됐다. 러시아병사도 치료했다. 지금은 지하실로 내려가 있다.
조산원 제니아 그리챠엔코(45)는 ”산부인과 병동에 있던 임신부 1명과 막 출산한 1명과 함께 걸어가던 아침에 포탄이 날아와 벽에 구멍이 났고 불이 났다. 정말 무서웠다“고 했다.
보가쵸프 경찰서장은 3월 29일 오후 주민들에게 누가 러시아군에 협력했는지를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제보가 거의 없다. 러시아군과 얘기하고 보드카를 마셨다느니 누가 러시아군이 찾고 있는 사람 집이라고 알려줬다느니 하는 정도다. 점령군과 함께 무기를 들고 주민들을 위협했다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철도역 인근 종자 삼점 종업원 갈리나 미차이(65)는 느릿느릿 선반에 물건을 올리면서 날이 개서 좋다면서도 ”씨앗을 뿌리고 키워서 살아갈 것“이라고 울면서 말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