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100번 째 생일을 맞이하는 우크라이나 노인이 가장 받고 싶어할 선물이 뭘까. 아마 히틀러와 스탈린의 전체주의적이고 반인륜적인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격동의 한 세기를 겪어낸 99세 8개월의 안나 바하틀라는 그래서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무어냐는 질문에 “그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에서 69세 딸 올하 푸니크와 함께 살고 있는 99세 바하틀라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와 스탈린 시기 대기근인 홀로모도르를 겪어낸 바하틀라는 러시아의 침략으로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원치 않아 했다.
바하틀라는 지난 한 세기동안 격동의 세월을 모두 견뎌냈다. 그는 소련의 집권기간보다 오래 살아남았고 1990년대를 이겨냈다. 올해 1월에는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음에도 코로나19 바이러스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100년을 눈 앞에 둔 지금, 그녀는 또 다른 난관에 처해 있다.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저지른 조국에서의 전쟁이다.
청력이 많이 감퇴한 그지만, 불과 몇 마일 떨어진 브로바리 지역에서 들려오는 큰 굉음은 모두 들렸다. 바하틀라 딸인 푸니크가 어머니 방의 유리창에 테이프를 붙이고 어두운 커튼도 달았지만 어머니의 충격적인 기억이 되살아나는 걸 멈출 수는 없었다.
우크라이나에 사는 80세 이상의 대부분 사람들은 많은 일들을 겪으며 살아왔다. 한 역사학자는 우크라이나와 더 넓은 지역을 ‘혈통지대’라고 불렀는데, 이 지역은 20세기 중반, 테러, 전쟁 그리고 홀로코스트를 겪은 히틀러와 스탈린의 폭력 사이에 낀 영토였다.
때문에 군사작전이 시작되면서 바하트라는 충격적인 기억이 되살아났다고 한다. 80세 이상 노인의 트라우마를 잠재우기 위해 한 양로원에서는 전쟁에 대해 함구한다. 이에 키이우 한 양로원은 지난 몇 주 동안 바깥 세상이 어떤 식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반면 일부 노인은 그 자식들이 전쟁 얘기를 숨기더라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아나톨리 루반(84)은 키이우 외곽의 러시아 전방 부대에서 조금 떨어진 서쪽 외곽에 혼자 산다. 전쟁 발발 후 인근에서 포격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는 “폭발과 사이렌 소리가 다 들린다”며 “시끄러울 때는 끝날 때까지 화장실에 앉아 있는다”고 했다.
루반은 “내 눈으로 전쟁을 본 적이 있어서 모든 것을 냉정하게 받아들인다”며 “내 눈으로 전쟁을 본 적이 있는데, 사람들은 모든 것에 적응하도록 강요받는다”며 “나는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고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하틀라 역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만 그의 딸은 최악으로부터 바하틀라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한다. 딸은 “전쟁에 관한 뉴스가 있으면 텔레비전을 끄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바하틀라는 1943년 6월, 독일 나치가 바할랴의 마을을 점령한 후 그는 수백만 명의 다른 여성들과 함께 오스타베이터가 되기 위해 보내졌다. 오스타베이터는 나라가 점령된 후 제3국의 노역에 강제동원된 민간인을 지칭하는 용어다.
그는 작은 오스트리아 마을인 네르니츠(Terniz) 캠프에서 2년을 지냈고 그곳 공장에서도 일했다. 바하틀라는 “우리는 아침에 빵 1/4 덩어리를 먹고 하루에 두 번 스프를 먹고 일요일에는 감자를 먹었다”고 회상했다.
바하틀라의 딸도 스탈린이 죽었을 때 울었던 것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들은 당시만 해도 스탈린의 죽음이 진정한 비극이라 생각했다. 그때 그시절의 자신 처럼 오늘날 러시아인들도 ‘특수작전’ 이라는 등의 선전에 뇌를 잠식당한 것 같다고 했다.
현재의 불행을 멈출 방법을 바하틀랴는 단 한 가지라고 여기는 듯 했다. 바로 푸틴 대통령의 죽음이다. 4개월이면 맞이할 자신의 생일에 무엇을 받고 싶냐는 질문에 바하틀랴는 “그가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