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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우크라 부차서 민간인 대학살…美-EU 추가 제재 나서

입력 | 2022-04-04 18:01:00


“양손을 뒤로 묶은 후 뒤통수에 총을 쐈다. 무차별 포격으로 거리에는 머리 팔 다리가 사라진 시신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새가 시신의 눈을 파먹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북서부 소도시 부차를 비롯해 수도 키이우 외곽 점령지에서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주장하는 시민들의 증언이다.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한 부차 등 키이우 외곽 일대에서 3일(현지 시간) 민간인 시신 410구가 발견되자 국제사회가 분노하는 가운데 유엔이 전쟁범죄 조사에 나섰다. 미국 유럽연합(EU) 등은 추가 제재를 예고했다. 외신은 “제노사이드(집단학살)가 대러시아 제재 강화의 변곡점”이라고 전했다.
● 거리 곳곳에 훼손된 민간인 시신들
미 CNN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검찰은 이날 러시아군이 퇴각한 부차 일대에서 민간인으로 보이는 시신 280여 구를 수습했다고 밝혔다. 이곳 거리 곳곳에서는 검은 포대 등으로 둘둘 말은 시신들이 목격됐다. 반쯤 타거나 신체 부위가 훼손된 시신도 많았다. 우크라이나군은 떠돌이 개나 새들이 특정 부위를 파먹기도 했다고 전했다.

미국 민간위성업체 맥사가 이날 공개한 위성사진에는 부차의 한 교회 앞마당에 길이 약 14m, 폭과 깊이가 1m를 넘는 구덩이가 포착됐다. 현지 주민들은 이 구덩이에 러시아군이 살해한 시민 150여 명이 묻혔다고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 CBS 인터뷰에서 “부차 지역에서 제노사이드가 벌어졌다. 우리 국민을 말살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국제 인권감시단체 휴먼라이츠워치도 “강간, 즉결 처형, 약탈 등 민간인 대상 범죄가 수없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전쟁범죄 입증을 위해 시신 410구 중 150여 구를 수습해 부검에 나섰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이날 성명을 내고 “책임 규명을 위해 독립적인 조사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러시아를 전쟁범죄로 처벌하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미국의 명령에 따른 음모론” “우크라이나 정부의 연출극”이라며 부인했다.

● 獨도 “가스 수입 금지해야”
미국과 서방은 대대적인 추가 제재를 예고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MSNBC에 출연해 “아주 이른 시일 내에 러시아 압박 수위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집단학살마저 서슴지 않는 ‘전쟁기계’ 푸틴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제재는 6일 나토 외교장관 회담에서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추가 제재로는 러시아 에너지·광물 금수 제재와 추가 금융제재, 러시아와 무역·금융 거래를 유지하는 국가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 등이 거론된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에드워드 피시맨 전 국무부 제재 담당 보좌관은 WP에 “이란식 제재 등 최대 제재에 이를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크리스틴 램브레히트 독일 국방장관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EU는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 금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 에너지 수입 금지에 반대하던 독일 이탈리아가 찬성으로 선회해 제재를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앞서 발트3국(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는 1일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군의 집단학살이 러시아산 석유, 천연가스 구매를 정당화하기 어렵게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