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정치부 차장
대선이 끝난 뒤 주변에서 가장 많이 물어보는 게 “그래서 이재명은 앞으로 어떻게 되냐”는 거다. 그가 주장하던 ‘정치보복’의 일환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냐부터 ‘문재인 코스’를 밟아 일단 해외로 떠나지 않겠냐는 등 다양한 추측이 난무했다.
당분간이라도 조용히 지내지 않겠냐는 세간의 예상과 달리 이재명은 선거 직후부터 분주했다. 일명 ‘개딸’을 자처하는 지지자들과 대선 전보다 더 활발히 SNS로 소통하더니 아예 국민 소통용 플랫폼도 만든다고 한다. 여의도와 거리를 두던 그는 대선 직후엔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원에게 감사전화를 돌리는 등 국회와의 접점도 늘렸다.
대선 패배 여파로 앞당겨져 치러진 원내대표 선거에도 그의 입김이 적잖이 반영됐다. 신임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재명 대선후보’ 시절 첫 비서실장이었다. 한 중진 의원은 “이재명계 의원들이 막판에 박홍근 표 다지기 작업을 해줬다”고 했다. 이 밖에 신임 박찬대 원내수석부대표는 이재명 캠프 수석대변인 출신이고 최근 비상대책위원회가 의결한 당 중앙위원에도 윤종군 전 경기도지사 정무수석 등 경기도 출신이 다수 포진했으니 원내의 이재명 색채는 어느 때보다 짙다.
뭐가 됐든 이렇게 되면 이재명은 대선 패배 후 불과 몇 개월 만에 당의 핵심으로 다시 우뚝 서게 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은 자기들끼리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며 ‘정신승리’ 중이지만 현실은 ‘어싸졌’(어쨌든 싸워서 졌다)이다. 이재명이 진정 유권자를 존중한다면 대선 패배 원인부터 복기하면서 반성하고 쇄신하는 게 우선인데 너무 조급해 보인다”고 했다.
정치권에서 흔히 ‘대선 재수생’더러 가장 두려울 게 없다고들 한다. 지난 선거에서 네거티브 리스크를 다 털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재명은 아니다. 아직 수사 중인 사안만 해도 대장동 의혹부터 성남FC 후원금 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 줄지어 있다. 그가 정치판에 다시 조기 등판하려는 계획이라면 법적 리스크부터 확실하게 털어내는 게 순서상 옳고, 그래도 늦지 않다. 아니면 자칫 거대 야당부터 장악한 뒤 ‘방탄’ 국회의원 신분이 돼 수사망을 피해가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만 살 것이다.
김지현 정치부 차장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