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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구노(왼쪽)와 브루크너.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 ‘낭만적’ 1악장 서두 부분은 구노 ‘아베 마리아’의 뒷부분과 닮았다. 동아일보DB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루치아에 나오는 테너 아리아는 슈베르트 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중 ‘아침인사’와 닮지 않았나요?”
그는 약 2초간 생각해보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렇군요! 재미있네!”
도니체티의 아리아는 D플랫장조, 슈베르트 ‘아침인사’는 테너 악보로 C장조다. 음높이는 다르지만 모두 각각의 조에서 계이름으로 ‘솔솔 미레도 솔(시)라솔’의 멜로디를 갖는다. 리듬도 거의 같다. 도니체티의 오페라는 1835년, 슈베르트의 가곡집은 1823년 세상에 나왔다. 도니체티는 슈베르트의 곡을 모방했을까. 죽고 나서 7년 뒤인 1835년의 슈베르트는 이탈리아에서 알려진 작곡가가 아니었다.
그 기억을 떠올린 것은 2022 서울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에서 9일 마르쿠스 슈텐츠 지휘 KBS교향악단이 연주할 브루크너 교향곡 4번 때문이었다. 낭만적(Romantisch)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곡은 호른의 신비로운 주제로 시작한다. 이 주제를 플루트가 받아 연주하기 시작하면 문득 다른 데서 들어본 느낌이 든다. 구노 ‘아베 마리아’의 ‘산타 마리아, 마리아, 마리아’ 부분과 비슷하다. 같은 음형을 음정을 높이면서 바꿔 가는 ‘시퀀스’ 기법이 더더욱 비슷한 느낌을 준다.
프랑스 작곡가 구노는 바흐 평균율 피아노곡집 1권에 나오는 음형을 반주삼아 선율을 붙인 ‘아베 마리아’를 1853년 발표했다. 오스트리아인인 브루크너는 21년 뒤인 1874년에 교향곡 4번을 썼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는 점이다. 브루크너도 자신만의 ‘아베 마리아’를 썼다.
브루크너는 구노의 ‘아베 마리아’를 듣고 자신의 교향곡에 성모의 상징으로 오마주했을까. 또는 그가 우연히 들은 구노의 곡이 의식 깊숙한 데 남아 있다가 교향곡을 쓰면서 떠오른 것일까. 아니면 두 곡의 유사성은 단지 우연의 결과일까.
세 곡 이상이 닮은 경우도 있다. 슈베르트의 피아노곡 ‘방랑자 환상곡’(1822년) 2악장은 C샵(#)단조의 ‘미 미미 미파미’로 시작한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8번(1892년) 3악장은 ‘미 미 미파미’로 시작한다. 이 곡은 D플랫(♭)단조이지만 C#과 D♭은 같은 음이므로 음높이도 같다. ‘느리게’라고 표시된 악장이어서 느낌도 비슷하다.
여기에 말러의 교향곡 8번 ‘천인(千人)교향곡’(1906년)이 가세한다. 2부 주요 주제인 ‘영원한 희열의 불꽃’ 주제는 음높이는 다르지만 계이름상 ‘미 미미 미파미’로 같다. 말러는 브루크너와 친했고 브루크너의 장대한 교향곡 구성을 이어받았으므로 브루크너 만년의 교향곡 8번을 몰랐을 리 없다. 공교롭게도 두 곡은 번호도 같은 ‘8번’이다.
베토벤과 함께 빈 고전파를 대표하는 작곡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작품 중에도 닮은 곡들이 있다. 하이든 현악4중주 62번 ‘황제’ 2악장은 황제 찬가로 알려진 곡이며 오늘날 독일 국가로 쓰인다. 이 곡 주제선율의 네 악절 중 마지막 악절 시작 부분은 모차르트 성가곡 ‘환호하며 기뻐하라’의 ‘알렐루야’ 뒷부분과 빠르기만 다를 뿐 꼭 닮았다.
글만 읽어서는 알 수 없다. 들어보기를 권한다. 이 밖에 수많은 음악사 속의 닮은 곡들을 유튜브 채널 ‘유윤종튜브’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