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내게도 올 것이 왔다. 가벼운 감기 증상과 함께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7일간 격리 조치가 내려졌다. 어떠한 대비를 할 새도 없이 갑작스러운 재택치료 7일이 시작됐다. 살면서 이렇게 길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주어진 적 있었던가. 돌이켜 보면 적어도 성인이 된 이후에는 없었다. 물론 학교나 학원, 직장에 가지 않는 시간은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의미하진 않았다. 규칙적인 일상에서는 벗어났다 하더라도 그 시간 동안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취미생활을 하거나, 연락이 뜸했던 친구를 만나거나, 미뤄뒀던 병원 진료나 은행 업무를 보는 등 알차게 그 시간을 채워야만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래야만 한다는 무언의 압박감을 느꼈다.
직장에 다닐 때 여름휴가를 위해 연차를 내면, 지치지도 않고 물어보는 직장 동료들에게 무엇을 할 예정인지, 무엇을 하고 돌아왔는지 대답을 해야 했다. 1년에 겨우 한 번 주어지는 장기 휴가이기에 완벽한 휴가를 만들기 위해 수개월 전부터 교통편과 숙소를 예약하고 계획을 짰다. 더 부지런한 사람들은 1년 전부터 다음 휴가를 계획한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 자가 격리 7일은 너무 아까운 시간이었다. 몸이 멀쩡하니 차라리 일을 하는 게 낫겠다 싶었고, 여행을 좋아하는 내게는 국내 여행을 두세 번도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인데 집에만 있어야 한다니…. 밖에 나갈 수 없어서 그런지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먹고 싶었고 평소 눈여겨보지도 않던 창밖의 풍경이 문득 예쁘게 느껴져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산책을 하고 싶었다. 첫날은 함께 자가 격리를 하게 된 엄마와 ‘하루 한 편씩 영화를 보자’는 야심 차고 알찬 계획도 세워 보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그 시간을 의미 있게 채워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전까지의 휴가는 ‘알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몸도 마음도 편하게 보내지 못했다. 책을 읽더라도 베스트셀러나 자기계발서를 골랐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더라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인기 콘텐츠만 선택했다. 휴식이란 다시 나아가기 위한 재정비의 시간이어야 했는데 휴식을 위해 또 다른 에너지를 쓰며 진정한 ‘쉼’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금방 기억에서 사라지는 쉽고 가벼운 소설을 읽거나 TV를 끄자마자 잊어버리게 될 프로그램을 봐도, 그 시간에 내 몸과 마음이 편하고 행복했다면 그것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진정한 휴식이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된 7일이었다.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