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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휴식을 누리는 방법[2030세상/배윤슬]

입력 | 2022-04-05 03:00:00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내게도 올 것이 왔다. 가벼운 감기 증상과 함께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7일간 격리 조치가 내려졌다. 어떠한 대비를 할 새도 없이 갑작스러운 재택치료 7일이 시작됐다. 살면서 이렇게 길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주어진 적 있었던가. 돌이켜 보면 적어도 성인이 된 이후에는 없었다. 물론 학교나 학원, 직장에 가지 않는 시간은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의미하진 않았다. 규칙적인 일상에서는 벗어났다 하더라도 그 시간 동안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취미생활을 하거나, 연락이 뜸했던 친구를 만나거나, 미뤄뒀던 병원 진료나 은행 업무를 보는 등 알차게 그 시간을 채워야만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래야만 한다는 무언의 압박감을 느꼈다.

직장에 다닐 때 여름휴가를 위해 연차를 내면, 지치지도 않고 물어보는 직장 동료들에게 무엇을 할 예정인지, 무엇을 하고 돌아왔는지 대답을 해야 했다. 1년에 겨우 한 번 주어지는 장기 휴가이기에 완벽한 휴가를 만들기 위해 수개월 전부터 교통편과 숙소를 예약하고 계획을 짰다. 더 부지런한 사람들은 1년 전부터 다음 휴가를 계획한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 자가 격리 7일은 너무 아까운 시간이었다. 몸이 멀쩡하니 차라리 일을 하는 게 낫겠다 싶었고, 여행을 좋아하는 내게는 국내 여행을 두세 번도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인데 집에만 있어야 한다니…. 밖에 나갈 수 없어서 그런지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먹고 싶었고 평소 눈여겨보지도 않던 창밖의 풍경이 문득 예쁘게 느껴져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산책을 하고 싶었다. 첫날은 함께 자가 격리를 하게 된 엄마와 ‘하루 한 편씩 영화를 보자’는 야심 차고 알찬 계획도 세워 보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그 시간을 의미 있게 채워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고 사흘째에 접어들자 점점 휴식에 익숙해졌다. 휴식을 누리는 방법을 조금 알아갔다고나 할까. 손에 잡히는 대로 다양한 책을 읽고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나오는 잔잔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평소 잘 놀아주지 못했던 강아지와 한참 같이 시간을 보내고 창밖의 꽃과 사람들을 아무 생각 없이 구경했다. 거기에는 ‘의미 있는’이라든가 ‘알찬’과 같은 수식어는 사라졌고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걱정도 불안감도 없었다.

이전까지의 휴가는 ‘알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몸도 마음도 편하게 보내지 못했다. 책을 읽더라도 베스트셀러나 자기계발서를 골랐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더라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인기 콘텐츠만 선택했다. 휴식이란 다시 나아가기 위한 재정비의 시간이어야 했는데 휴식을 위해 또 다른 에너지를 쓰며 진정한 ‘쉼’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금방 기억에서 사라지는 쉽고 가벼운 소설을 읽거나 TV를 끄자마자 잊어버리게 될 프로그램을 봐도, 그 시간에 내 몸과 마음이 편하고 행복했다면 그것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진정한 휴식이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된 7일이었다.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