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에서 부실채권 사들여… 이자 면제-장기 분할 상환도 검토 연체되기 전에 미리 채무재조정… 신용불량자 낙인 없이 재기 지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로 급증한 자영업자 부채를 관리하기 위해 부실 채무를 탕감해주는 ‘배드뱅크’ 설립이 추진된다. 대출 만기 연장 등 코로나19 지원책이 9월 말 종료되면 빚을 제대로 갚기 어려운 자영업자가 속출할 수 있어 빚 탕감, 장기 분할 상환 등을 통해 이들의 재기를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금융당국은 연체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빚 갚을 능력을 따져 선제적으로 자영업자 채무를 재조정해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는 소상공인진흥공단, 정부, 은행이 공동 출자하는 배드뱅크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일종의 배드뱅크를 만들어 장기간에 걸쳐 저금리로 연체된 대출을 상환할 방안을 적극 검토해달라”고 주문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1월 말 현재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만기를 연장하거나 상환을 유예한 대출 잔액은 133조4000억 원이다. 이 중 만기 연장이 116조6000억 원, 상대적으로 연체 가능성이 높은 이자 상환 유예 금액은 5조 원이다. 2020년 4월 시작해 네 차례 연장된 이 조치가 올 9월 말 끝나면 빚으로 버텨온 영세 자영업자의 부실이 한꺼번에 드러날 수 있어 배드뱅크를 통해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역대 정부도 출범 1년 차에 부실 채권에 대한 대대적인 ‘신용사면’을 해줬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10년 이상, 1000만 원 이하 연체 채권을 전액 탕감해줬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6개월 넘게 갚지 못한 1억 원 이하의 신용대출을 조정해줬다. 2008년엔 ‘신용회복기금’으로 3개월 이상 1000만 원 이하 신용대출을 조정해줬다.
금융당국은 아직 연체가 본격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매출 하락과 상환 능력 등을 심사해 향후 부실 우려가 있는 대출에 대해 선제적으로 빚을 탕감해주는 방안을 인수위에 보고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숙박·음식업 등 대면 업종과 영세 자영업자 상당수가 이미 빚 갚을 여력을 거의 잃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파산에 빠지기 전에 사전 채무 재조정을 통해 재기를 돕겠다는 취지다. 금융권에서는 ‘정상’(연체 30일 미만)에서 ‘요주의’(연체 30일 이상∼90일 이하) 등급으로 넘어가는 대출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와 함께 특례보증을 통한 저금리 대출 지원, 고금리 자영업자 대출을 저금리로 바꿔 주는 대환대출 등도 자영업자 부채 관리 방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