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정책협의단, 한미 공조 속 정책 조정 의지 북핵 대응할 美 확장억지력 신뢰성 높일 때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적극 관여해야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한미 정책협의단을 미국에 파견하면서 본격적인 외교 행보에 첫발을 내디뎠다. 취임 전에 정책협의단을 미국에 파견하기로 한 결정은 더 강력한 한미 공조의 틀 안에서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을 재조정해 국가 이익을 보존, 증진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문재인 정부도 한미 공조 강화를 위해 일정 노력을 기울였다. 문 정부는 한국의 외교안보는 한미동맹이 주축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여러 번 표출했고, 2021년 한미 정상회담은 한미동맹을 미래지향적인 포괄적 글로벌 동맹으로 격상시킬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양 정상은 전통적 군사안보 외에도 국제보건 기후변화 등 비전통 안보에 관한 협력 강화에 합의했고, 첨단산업(AI와 6G,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항공우주 등)과 공급망 강화에 대한 협력 방안은 근래 회자하는 ‘경제안보’ 영역을 아우르고 있다. 공동선언문에는 보수 정권도 껄끄러워했던 대만해협 평화의 중요성이 명기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문 정부의 대미외교에 후한 점수를 줄 수는 없다.
문 정부 외교의 ‘최우선(overriding)’ 원칙은 ‘남북 화해’였다. 그러다 보니 대미외교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미국의 동의 도출에 초점을 맞춰 주고받기식으로 진행됐고, 한미 간 대북정책 엇박자는 국민을 불안하게 했다. 임기 말 종전선언을 위한 외교는 문 정부 ‘북한 바라기’ 외교의 결정판이었다. 이 때문에 다른 외교 현안이 북한이라는 블랙홀에 함몰되고 말았다. 굴종적 대중외교 역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선한 영향력을 맹신하게 만든 ‘북한 중심’ 외교의 부작용 중 하나다. 윤 정부는 한국 외교안보의 최우선 원칙을 다시 정립하고, 정책의 위계(位階)와 우선순위를 재조정해야 한다. 그런 맥락 속에서 대북정책 역시 재조정해 추진해야 한다.
한국 외교의 주요 관심 지역도 재조정해야 한다. 지금 인도태평양은 안보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주요 국가들이 각각의 전략을 마련해 해당 지역 관여에 공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다. 윤 정부 역시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마련해 미국 등 자유주의 국가와의 협력을 도모하며 역내 관여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도 신남방 정책이 있긴 하다. 하지만 국가 자원을 신북방 정책에 우선 투여했고 중국을 의식해서였는지 신남방 정책에는 너무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신북방 정책도 좋다. 남북이 화해하고 북한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남북 화해는 북한 정권이 국가전략의 방향을 바꾸기 전에는 어려운 구조다. 대전략의 관점에서 지금은 해퍼드 매킨더의 ‘심장지역(heartland)’보다 니컬러스 스피크먼의 ‘주변부(rimland)’가 훨씬 중요한 시대다. 한국 외교는 유라시아 대륙부를 바라보기보다는 인도태평양의 주변부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 외교안보 정책의 재조정은 국내 합의가 뒷받침돼야 한다. 외교안보 정책의 ‘정치화’는 선거로 정권을 교체하는 민주국가에서 일정 부분 불가피하지만 ‘퍼펙트 스톰’급 위기에 처한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은 탈(脫)정치화가 시급하다. 윤 정부가 초당적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21세기 대한민국의 핵심 국가이익을 규정하는 작업에 나서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국가이익이라는 개념을 자주 사용하지만, 우리가 타협할 수 없는 핵심 국가이익을 규정하는 국가적 작업을 수행한 적이 없다. 초당적 TF가 21세기 대한민국 핵심 국가이익을 규정하고, 이를 토대로 외교안보 대원칙과 정책의 위계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그래야 신냉전 시대에 지속 가능한 한국의 외교 대계를 마련할 수 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