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캠퍼스에서 만난 맷 버트 MIT 한국 프로그램 담당자(위 사진)와 버클리음대 교정에서 만난 케이팝 헌정 밴드 멤버들. 보스턴=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임희윤 기자
매사에 감사하란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 근데 매사추세츠주에 감사할 일이 생길 줄은 또 몰랐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하면 뭐가 먼저 떠오르는지? 역사 마니아라면 보스턴 차(茶) 사건이리라. 미국 독립운동의 시원. 대학 도시로도 이름났다.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웰즐리대 등 명문사학을 안팎에 품은 곳. 음악 팬도 잊지 못할 예향이다. 대표 주자가 저 싱거운 이름의 애향 록 밴드 보스턴. MIT 출신의 수재 톰 숄츠가 이끌며 자신의 공학 지식을 ‘More Than a Feeling’(1976년) 등 명곡 녹음에 쏟아부은 독특한 팀. 보스턴은 버클리음대도 가졌다. 키스 재럿, 게리 버턴 등 재즈 거장부터 록 밴드 드림 시어터, 이매진 드래건스까지 다양한 음악가가 거쳐 간 곳.
#1. 보스턴의 록 음악사를 일괄하려면 ABC, 아니, ABCDE부터 외우면 된다. 세계적 록 밴드 에어로스미스, 보스턴, 더 카스(The Cars), 드림 시어터, 드롭킥 머피스, 익스트림을 배출했다. 이 ‘보스턴 음악 알파벳’은 인근 도시 로웰이 무대인 영화 ‘더 파이터’(2010년)도 반영했다. 권투 영화답게 뜨거운 음악이 많이 쓰였는데 동향 밴드 에어로스미스, 드롭킥 머피스의 로큰롤도 빠지지 않는다.
#3. 강 건너 MIT 교정에서도 한국 문화 서포터를 만났다. 재학생에게 한국 연수나 인턴십 기회를 만들어주는 ‘MIT 한국 프로그램’ 담당자 맷 버트 씨다. 1999년 한국 땅을 처음 밟고 매력에 푹 빠졌다는 그는 “내 이렇게(케이팝이 세계적 인기를 끌게) 될 줄 진즉에 알았다”며 너스레부터 떨었다.
“당시 god의 ‘거짓말’ ‘길’을 들으면서 미국에서도 언젠가 반드시 통할, 수준 높은 음악이라고 생각했거든요.”
MIT 내 한국어 수업 개설에 일등공신이기도 한 버트 씨는 “한국에 가려는 지원 학생 수가 매년 늘고 있다”면서 “공학 학교인 만큼 삼성전자, LG전자가 주요 교류처였는데 최근 NC소프트, SM엔터테인먼트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국제교류재단과도 긴밀히 협력해 교류의 폭을 넓힐 생각이다.
#4. 팬덤을 넘어 이제 학계와 기업이 움직인다. 앞서 언급한 버클리음대 내 케이팝 헌정 공연 팸플릿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바로 ‘스페셜 생스 투(특별 감사)’란. 올해 최초로 개설된 케이팝 과목을 맡은 김혜주 교수, 에리카 멀 총장 등 학교 관계자들 옆에 나란히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민희경 CJ제일제당 사회공헌추진단장의 이름이 보였다.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 뒤에 현지 문화 산업의 공고한 벽을 깨려는 물밑 작전이 있었다는 것이 떠오른다. CJ문화재단은 2011년부터 장학 프로그램으로 버클리음대에 차세대 인재들을 보내며 네트워크를 강화했다. 멀 총장은 지난해 취임하자마자 첫 해외 출장지로 한국을 택했다. 문화 산업의 파워게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하다.
#5. 격세지감. A, B, C, D, E로 기억하던 보스턴에 이젠 K를 추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케이팝은 더 이상 로스앤젤레스의 코리아 타운에서 LA 갈비를 뜯은 뒤 한국 노래방에 가야 접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보스턴에서, 라스베이거스에서, 오스틴에서 케이팝 아이돌을 넘어 더 많은 한국 음악이 소개되고 주목받을 날도 오지 않을까. 보스턴이 부른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