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사회부 차장
보이스피싱 범죄가 우리 사회에 본격 출현한 건 2006년이다. 그 무렵 인터넷 국제전화가 널리 보급된 것과 관계가 있다. 피싱범들은 발신지를 숨기기 용이하고 사용료도 저렴한 인터넷전화로 ‘안전한’ 중국에서 맘 놓고 사기를 치기 시작했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는 그해 6월 경찰에 접수된 전화 사기 피해가 73건이었다고 전했다. 하루 2건이 조금 넘었던 것이다.
16년이 지난 지금 보이스피싱은 근절되기는커녕 우리 사회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는 3만982건이었고, 피해액은 7744억 원으로 웬만한 시군의 1년 예산과 맞먹었다. 17분마다 1명이 보이스피싱에 속아 약 2500만 원을 날린다.
이제 보이스피싱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상적 재난에 가깝다. 어르신이나 사회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가 잘 속아 넘어간다는 것도 오해다. 50대 피해자가 가장 많고, 다음이 40대다. 피해 건수는 2018년 이후 3만 건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집안이 풍비박산 나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는 피해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통장 발급 절차를 강화하고, 인출을 지연시켜 수거 통로인 금융계좌를 옥좼더니 전달책이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가로채는 방식으로 수법을 변경했다. 지난해의 경우 피해자의 3분의 2가 이 방식에 당했다. 일자리를 준다는 꼬임에 넘어가 전달책으로 활동하다가 중벌을 받는 젊은이도 적지 않다. 가족 전화번호로 발신한 것처럼 보이게끔 전화를 걸어 납치를 가장하는 수법도 등장했다.
경찰이 ‘공공기관은 전화로 금융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백날 홍보해도 소용없다. 역학조사관 사칭 보이스피싱이 활개를 치는데, 실제로 서울 일부 보건소가 ‘재택치료자 물품지원비’를 지급한다며 문자로 통장 사본 등을 보내라고 요구한 사실이 본보 취재로 드러나기도 했다.
경찰은 범정부 합동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 신고·대응센터’를 설립해 보이스피싱에 원스톱 대응할 방침이라고 최근 밝혔다. 필요한 일이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고액 이체나 인출을 더 번거롭게 만들 필요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 해법은 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중국, 필리핀 등에 있는 보이스피싱 상부 조직이 건재한 상태에서는 피해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경찰이 현지 당국과 공조 속에 해외에서 조직 총책을 검거했다는 소식이 가끔 전해지지만 전체 피해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조종엽 사회부 차장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