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화가 윌리암아돌프 부게로의 ‘분노의 여신들에게 쫓기는 오레스테스’(1862년). 어머니를 살해한 후 ‘분노의 여신’들에게 쫓긴 오레스테스는 아테네로 와서 재판을 받는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서북쪽에 있는 ‘아레스의 언덕’(아래 사진). 여기에서 오레스테스의 재판이 열렸다고 전해진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위키피디아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건너편에 우뚝한 바위 언덕이 있다. ‘아레오파고스’(아레스의 언덕)이다.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사람들의 발길에 바위는 닳고 닳았다. 여인족 아마조네스가 이 언덕에서 전쟁의 신 아레스에게 제사를 지내고 아크로폴리스를 공격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하지만 ‘아레스의 언덕’은 최초의 시민 법정이 선 곳으로 더 유명하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신들이 재판에 참여했을 정도이니까.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신들까지 나섰을까?》
얽히고설킨 친족살해 재판
엄청난 가문에서 벌어진 친족 살해 재판이었다. 피고 오레스테스는 트로이아 원정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아들이었고, 그의 죄목은 모친 살해였다. 명백한 범죄였다. 그는 치밀한 계획에 따라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의 목을 잘랐다. ‘모친살해범이니 돌로 쳐 죽여야지. 신들까지 끼어들 일이었나?’ 누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죽은 어머니에게는 변명거리가 없을까? 그녀에게 남편 살해는 큰딸에 대한 복수였다. 아가멤논은 출정과 승리를 위해 딸 이피게네이아(오레스테스의 누나)를 죽였다. 폭풍 때문에 함대 출항이 어려워지자 여신 아르테미스를 달래기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친 것이다. 아가멤논은 명분 없는 전쟁을 위해 친딸을 제물로 바친 비정한 아버지였다! ‘그럼 아가멤논이 비극을 자초했군.’ 누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신들의 팽팽한 유무죄 공방
대단한 가문의 얽히고설킨 복수 사건이니 신들이 재판에 참여해도 이상하지 않다. 오레스테스는 유죄인가? 이것이 재판의 핵심 사안이다. 검사 측에는 ‘복수의 여신들’이 있다. 이들은 모친 살해를 이유로 오레스테스를 단죄한다. 변호인 측에는 제우스의 질서를 대변하는 아폴론이 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임을 이유로 들어 모친 살해범을 변호한다. 어머니 편과 아버지 편이 맞서면서 오레스테스 재판은 성(性) 대결의 양상을 띤다. 신들의 세대 갈등까지 겹치면서 재판은 더더욱 복잡해진다. 구세대에 속한 복수의 여신들은 친족관계의 수호자로 나서고, 신세대의 신 아폴론은 계약으로 맺은 혼인의 신성함을 대변한다. 어느 쪽이 옳은가?
재판은 지혜의 여신 아테네가 맡았다. 아테네는 어머니 없이 제우스의 머리에서 나왔지만 여신이니까 재판의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을까? 아테네의 재판하는 모습이 정말 지혜의 여신답다. 혼자의 판결이 어리석은 짓임을 잘 아는 여신은 시민 11명을 배심원으로 뽑는다. 재판 규칙도 미리 정한다. ‘다수결로 결정하되 가부동수일 경우 오레스테스를 무죄로 한다.’ 드디어 아테네와 11명의 배심원이 오레스테스의 운명을 결정하는 순간이 왔다.
배심원들이 차례로 항아리에 돌을 던졌다. 마지막 돌을 쥔 아테네 여신은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천명한다. “나는 오레스테스를 위해 이 투표석을 던질 것인데, 나를 낳아준 어머니가 없고, 결혼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진심으로 남성만을 인정하며 참된 의미에서 아버지의 자식이니까. 그래서 여자의 죽음을 더 무겁게 여기지 않소. 그 여자가 가정의 수호자인 남편을 살해했으니까.”(김기영 ‘오레스테이아 3부작’) 최종 결과는? 유죄의 돌과 무죄의 돌이 각각 여섯 개였다. 결국 모친 살해범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지면서 여신의 뜻이 관철됐다.
문명의 질서가 남긴 것은…
그리스 아테네의 ‘아말리아 거리’에 있는 작가 아이스킬로스(기원전 525∼기원전 456)의 흉상. ‘오레스테이아 3부작’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조대호 교수 제공
복수의 여신들이 머문 지하의 거처는 어디일까? 굳이 찾아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런 곳은 우리가 속한 세상 곳곳에 널려 있으니까. 문명의 밑바닥에는 ‘분노의 여신들의 목소리’가 묻혀 있다. 인간의 역사에서 ‘문명’의 이름으로, ‘법’의 이름으로. ‘편리’의 이름으로, ‘정상’의 이름으로 무시되어 묻혀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의 ‘문명’이 그렇게 묻혀버린 것들의 억압 위에 세워져 있음을 인정하기란 불편할 수 있다. 이 불편함을 일컬어 프로이트는 ‘문명의 불편함(das Unbehagen in der Kultur)’이라고 불렀다.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사라질 불편함이 아니다. 우리에게 최선은 이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아테네의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 아닐까? 묻혀버린 목소리들을 공경하자. 공경의 마음이 포용의 길을 연다. ‘정의’, ‘정상’, ‘편리’를 내세워 아무데나 ‘불법’, ‘비정상’, ‘불편’의 딱지를 붙이면 그동안 묻혀 있던 분노와 저주까지 터져 나올 수 있다.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