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종 줄어 올들어 64만회분 폐기 정부, 화이자-모더나 계약 조정나서
정부가 올해 들여올 예정이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중 1748만 회분의 도입을 취소했다. 계약한 백신 도입을 취소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7일 방역당국에 따르면 정부는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국제 백신 공유 프로젝트)를 통해 올해 들여오기로 한 코로나19 백신 1748만 회분을 받지 않기로 했다. 지급한 비용은 대부분 돌려받는다. 정부 관계자는 “이미 한국에 배당된 소량의 물량은 환불이 불가능해 비용 지불 후 해외에 공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최근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줄어들면서 시행됐다. 한때 136만 회분까지 늘었던 국내 하루 백신 사용량은 최근 2만 건 안팎까지 줄었다. 올해 폐기한 백신이 지난달 22일까지 64만 회분에 달한다. 아직 쓰지 않은 백신도 1700만 회분이 쌓여 있다.
올해 백신 1억2594만회분 더 들어와… “내년 후로 최대한 이월”
‘급구했던’ 백신, 이젠 공급 과잉… 현 접종속도땐 19년치 물량 해당
제약사 백신은 계약 취소 힘들 듯… 먹는 치료제로 변경도 쉽지 않아
지난해 8월 정부는 강도태 당시 보건복지부 2차관을 필두로 한 대표단을 미국으로 급파했다. 모더나가 만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국내 반입이 계속 늦어지자 원활한 공급을 독촉하기 위해서였다. 8개월이 지난 지금,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정부는 올해 받기로 계약한 백신 물량 1억2594만 회분을 ‘천천히’ 들여올 방법을 찾고 있다. 성인 대부분이 백신 접종을 끝낸 상황에서 공급 과잉으로 인한 백신 폐기가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 “백신 대신 치료제 받는 방안도 검토하자”
이번에 국내 도입을 취소한 백신 1748만 회분은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국제 백신 공유 프로젝트) 계약 물량이다. 이 기구는 백신을 전 세계에 공평하게 분배하는 게 목적이라 우리 정부가 “이미 백신이 많다”며 도입을 철회하는 게 가능했다.
화이자, 모더나 백신은 한 회분 가격이 최소 2만 원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새로운 백신 접종 수요를 찾지 못하거나 기존 계약을 바꾸지 못하면 국고 낭비 논란이 나올 수도 있다.
현재 정부는 백신 도입을 늦추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에도 백신 7000만 회분 도입을 올해로 늦춘 적이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모더나, 노바백스 등 국내 위탁생산 백신은 공급 시기 조정 여지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정부 안팎에선 지금 부족한 먹는 치료제를 백신 대신 공급받도록 계약을 바꾸자는 아이디어가 나온다. 화이자는 백신 외에 먹는 치료제 팍스로비드를 생산한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설득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실무진 차원의 설득이 어렵다면 그 윗선이 직접 나서 계약 변경을 시도해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 고령층 4차 접종도 고려
4차 접종을 하는 고령층을 몇 살 이상으로 할지는 아직 논의 중이다. 미국은 50세 이상에 대해 4차 접종을 권고했다. 만약 우리가 미국 기준을 따른다면 3차 접종을 마친 1923만 명이 추가 접종 대상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정부는 코로나19에 한번 걸렸던 사람에게 3차 접종을 권고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지금은 코로나19 완치자는 2차 접종까지만 권고한다. ‘오미크론 변이’ 유행에 따라 국민 중 1477만 명(7일 0시 기준)이 코로나19에 확진된 점을 감안하면 추가 접종 수요가 적지 않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 백신은 앞으로 계절 독감 백신처럼 매년 접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