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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로 초등생 두 아들 살해 40대…“등하굣길엔 손잡고 함께 해”

입력 | 2022-04-08 17:50:00

5일 서울 금천구 시흥동의 한 빌라에서 초등학생 두 아들을 목 졸라 죽인 후 자수한 40대 여성의 SNS 프로필 사진. 아이들을 살해한 이 여성은 평소 SNS 프로필을 아이들의 밝은 모습으로 해뒀다. 독자제공


서울 금천구 시흥동의 한 빌라에서 8, 9세 두 아들을 숨지게 한 40대 여성 A 씨가 경찰에 자수해 조사를 받고 있다.

8일 금천경찰서는 “5일 초등학생 두 아들을 살해한 A 씨가 7일 오후 경찰에 자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경찰에서 남편이 1억 원 가량 도박 빚을 지면서 생활고를 겪다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A 씨는 남편과 별거 중이며 혼자 두 아들을 양육해왔다.

8일 사건 현장 인근에서 만난 이웃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인근 주민 B 씨는 “아이들 손을 잡고 등하교를 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카카오톡 프로필에 있던 아이들 사진이 다 삭제됐더라”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A 씨는 남편이 없어 집수리 문제 등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B 씨는 “A 씨가 ‘남편이 집에 안 들어온다, 차라리 바람난 거면 좋겠다’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며 도박 빚 등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같은 빌라에 거주하는 다른 주민은 “아이들이 인사를 잘 했다. 우리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라 잘 어울렸다. 아이스크림을 사주기도 했는데 더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라며 “어머니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것을 워낙 힘들어했다”고 기억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A 씨는 평소 아이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등 다른 부모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같은 빌라 주민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속 A 씨의 프로필 사진은 두 아들의 모습이었다.

커뮤니티에는 지난해 9월 밤에 공사가 진행되는 것을 두고 A 씨가 “아이들이 내일 학교에 가야 하니 오후 8시 50분 이후에는 양해 부탁드린다”고 쓴 글이 남아 있었다. 2015년에는 “두 아이가 습기 때문에 피부염에 걸릴까봐 매일 환기 중이니 빠른 보수 부탁한다”고도 했다.

A 씨는 2019년 6월부터 2020년 2월까지 거주하는 빌라의 대표도 맡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동대표를 끝낼 때는 주민들이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인근 주민들은 A 씨가 밝은 모습으로 다녀 생활고에 시달리는지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후임 대표를 맡은 김모 씨(34)는 “A 씨가 2014년부터 8년 동안 자가로 거주하는 걸로 알고 있다. 빚과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걸 전혀 몰랐다”고 했다.

A 씨의 두 아들이 다녔던 초등학교는 슬픔에 잠긴 모습이었다. 학교 관계자는 “평소 밝은 모습만 봐서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며 “두 아이를 맡았던 담임선생님들 역시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큰 충격과 슬픔에 잠겼다”고 전했다.

금천구청에 따르면 A 씨 가정은 기초생활수급자 등 복지 대상자가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금천구청 관계자는 “복지 혜택을 못 받은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 거주 형태가 자가였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했다.

경찰은 8일 오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A 씨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진 않은 걸로 보인다”며 “구체적인 범행 동기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A 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범행 현장에는 A 씨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흔적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