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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와 권력자의 세계, 그 간극이란

입력 | 2022-04-09 03:00:00

[책의 향기]◇역사를 만든 음악가들/로르 도트리슈 지음·이세진 옮김/296쪽·1만7800원·프란츠




9·11테러가 발생한 지 4개월 뒤인 2002년 1월 미국 작곡가 존 애덤스(75)는 미국 동부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뉴욕필하모닉 예술감독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작품을 의뢰한 것. 하지만 그의 작업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고, 곧 불가능한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다는 고민에 빠졌다. 다른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상처도 아물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테러 현장에 남아 있는 희생자들의 흔적과 메모를 기록하고, 어둠이 내리면 도시의 소리를 녹음했다. 새벽에도 교통 소음과 사이렌, 발소리 등 침묵하지 않는 도시의 숨결을 담아냈다. 희생자들의 메모는 대사와 노랫말이 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영혼의 환생에 대하여’는 9·11테러 1주년이 조금 지난 2002년 9월 19일 초연됐다. 애덤스는 이 작품으로 2003년 퓰리처상 음악 부문을 수상했다.

저자는 유럽의 절대왕정 시기부터 9·11테러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의 한가운데에서 스스로 역사가 되어야 했던 작곡가들의 삶을 다뤘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베르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쇼스타코비치 등 작곡가 13명의 익숙한 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연들이 이어진다. 슈트라우스는 나치 권력에 순응해 ‘올림픽 찬가’를 만들었고,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을 눈여겨보는 스탈린을 의식하면서도 자기만의 예술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이 마주해야 했던 것은 권력자, 나아가 그들을 둘러싼 세상이었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