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 빙하의 부엉이/조너선 C 슬래트 지음·김아림 옮김/420쪽·1만8000원·책읽는수요일
2008년 3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숲 일대를 탐사하던 저자가 블래키스톤물고기잡이부엉이에게 다가서자 새가 귀깃을 세우며 경계하고 있다(위 사진). 2009년 3월 한밤중에 강가에서 물고기잡이부엉이 새끼를 포획해 다리에 붉은 끈을 두르는 저자(아래 사진 왼쪽). 이 끈으로 개체 수를 확인할 수 있다. 책읽는수요일 제공
저자의 인생을 바꾼 첫 만남이었다. 2005년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벌목이 블라디보스토크 명금류(鳴禽類·참새목에 속하는 새의 총칭)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석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박사논문 주제로 5년 전 우연히 만난 새를 떠올린다. 이 책은 그가 2006년부터 5년간 진행한 ‘물고기잡이부엉이 보존 프로젝트’를 담은 탐사기다.
날개를 펼치면 2m에 이르는 물고기잡이부엉이는 1980년 무렵 멸종위기를 맞았다. 강 하류 곳곳에 댐이 건설돼 먹이인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오르지 못하게 됐고, 벌목으로 생의 터전마저 잃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러시아 동부지역에서 1000여 마리에 이르던 개체 수는 1980년대 10분의 1로 급감했다. 이에 조류학자 수르마흐 등과 팀을 꾸린 저자는 5년간 네 차례에 걸쳐 블라디보스토크로 탐사를 떠난다. 목표는 새의 몸통에 동선을 추적하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장치를 다는 것. 새들의 동선 데이터를 분석해 터전을 지키는 해법을 찾겠다는 계획이었다.
2008년 4월 나무둥지에서 막 알을 깨고 나온 물고기잡이부엉이 새끼 모습. 책읽는수요일 제공
그렇다면 벌목을 중단시켜야 할까. 고민 끝에 저자는 부엉이와 지역경제가 공존하는 해법을 찾아낸다. 벌목 회사와 협의해 물고기잡이부엉이가 둥지로 삼는 황철나무와 난티나무를 베지 않기로 합의한 것. 벌목으로 생계를 지탱하는 지역민의 삶을 유지하면서도 새의 터전을 지켜낸 합리적인 해법이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18년 다시 숲을 찾은 저자는 2년 전 블라디보스토크 일대를 휩쓴 태풍에도 무사히 살아남은 물고기잡이부엉이 한 마리를 만난다. 인간의 도움 없이도 꿋꿋이 자연에서 살아가는 새를 보며 자연의 자생력에 감탄하는 저자의 모습이 5년의 힘겨운 여정과 겹쳐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