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 1차투표 종료
8일 프랑스 남서부 앙글레에서 한 남성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왼쪽)과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연합 대표의 대선 포스터 앞을 지나치고 있다. 최근 르펜 대표의 지지율 상승으로 두 사람이 10일 대선 1차 투표는 물론이고 24일 결선투표에서도 초접전을 벌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앙글레=AP 뉴시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전쟁 공포에 빠져 있는 가운데 10일 프랑스에서 대선 1차 투표가 치러졌다. 당초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낙승이 예상됐지만 선거 막판 극우 국민연합을 이끄는 마린 르펜 대표의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강력한 반(反)유럽연합(EU), 반난민 정책을 주창하는 르펜 후보가 승리하거나 마크롱 대통령과 접전을 벌이면 유럽이 2016년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미국 폴리티코 등이 보도했다.
이번 투표는 10일 오후 8시(한국 시간 11일 오전 3시)에 끝났다. 과반을 얻은 후보가 없으면 1, 2위 후보가 24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후보는 2017년 대선 때도 결선투표에서 맞붙어 각각 66%, 34%를 얻었다.
○ 마크롱-르펜 격차, 한 달여 만에 크게 줄어
마크롱 대통령은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 직후 러시아 모스크바로 날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는 등 사태 해결에 깊숙이 관여했다. 전쟁 상황에서 강한 지도자를 원하는 유권자의 심리와 맞아떨어져 2월 28일 조사에서 그는 르펜 대표를 12%포인트 차로 앞섰다.지난달 초 상원이 마크롱 정권이 연금 개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등에서 맥킨지 등 민간 기업에 과도한 자문료를 줬다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그의 지지율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크롱 정부는 지난해에만 8억9390만 유로(약 1조2000억 원)를 자문료로 지불해 2018년(3억7910만 유로)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은 돈을 썼다. 맥킨지가 2020년에만 3억2900만 유로의 매출을 올렸음에도 최소 10년간 법인세를 한 차례도 납부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젊은층의 결집이 르펜 후보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외교안보, 연금 개혁 등 거시적 사안에 치중한 마크롱 대통령과 달리 그가 30세 이하의 소득세 폐지, 기초연금 인상, 물가 상승 비판 등 생활 밀착형 의제에 집중한 것이 유효했다는 의미다. 18∼24세 유권자의 56%는 “24일 결선투표에서도 르펜을 찍을 것”이라고 했다. 2016년 미 대선 때 여론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 지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가 투표장에서 트럼프를 찍은 유권자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소위 ‘샤이 르펜’이 상당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 외신 “르펜 선전은 EU 전체 위기”
그러나 국민연합이 대선은 물론이고 6월 지방선거에서도 호성적을 거두면 러시아 제재 등 EU 차원의 단합 행동이 어려워져 유럽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르펜 후보가 과거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공감하는 발언을 해왔고, 국민전선 또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에 비판적 태도를 보여 왔다며 그가 승리할 경우 브렉시트 후 EU의 최대 위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 노무라홀딩스는 르펜이 승리하면 미 달러 대비 유로 가치가 브렉시트 당시 수준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