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제궁은 프랑스 대통령의 집무실 겸 공관이다. 프랑스는 1990년 이후 매년 9월 셋째 주 주말 ‘유럽문화 유산의 날’에 엘리제궁을 개방해왔다. 지난 2010년 9월19일 파리 연수시절 엘리제궁 개방하는 날에 들어가 내부 구조를 속속들이 관람했다. 파리 8구 샹젤리제 대로 인근에 있는 포부르 생 토노레 거리에 이른 아침 가족들과 함께 줄을 시작했는데, 무려 8시간 동안 줄을 선 끝에 엘리제궁 정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엘리제궁은 1만1179m² 면적을 보유한 2층 건물. 당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집무실 책상까지 공개하는 화끈한 관람동선이어서 적잖게 놀랐다. 이렇게까지 개방을 해도 보안에는 문제가 없을까. 대통령 집무실에 삼성TV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은근한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다.
대통령 집무실은 엘리제 궁의 2층 중심에 있어 정원을 한가운데서 내려다볼 수 있다. 이 집무실은 나폴레옹 3세가 황후 외제니를 위해 만든 금 장식방인 ‘살롱 도레(Salon Doré)’다. 베르사유 궁에 있는 ‘거울의 방’처럼 정원으로 난 창을 마주보는 벽에 창 모양의 거울이 있어 밝고 환하다.
샹들리에가 빛을 비추고 있는 대통령의 책상은 엘리제 궁의 최고 보물로 꼽힌다. 18세기 가구장식가 샤를 그레상이 루이 15세를 위해 제작한 이 책상이다. 책상에는 필기도구와 촛대모양의 등이 놓여 있었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 시절에는 이 방을 집무실로 사용하지 않았다. 왕실풍이 공화국의 정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대통령 집무실 바로 왼쪽에 비서실장 집무실이나 간이 회의실로 쓰이는 초록색 방인 ‘살롱 베르(Salon Vert)’가 있다. 대통령 집무실 바로 오른쪽에는 대통령과 참모진이 수시로 회의를 하는 회의실(Salon d‘Angle)이 있다. 비서실장 집무실과 회의실의 옆쪽으로도 각각 수석 보좌진들의 사무실이 있다. 불과 수십 m의 동선 내에 대통령과 핵심 보좌진의 방이 나란히 있어 효율성이 높다. 대통령의 하루 일과는 오전 8시 반에 출근해 집무실 옆 ‘살롱 베르’에서 참모들과 회의를 하면서 시작된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임기 중 ’살롱 베르‘에서 카를라 브뤼니 여사와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1층 ‘살롱 뮈라(Salon Murat)’에서는 매주 수요일 장관들이 참여하는 국무회의가 열린다. 원형 탁자에 대통령과 장관들이 둘러앉고 엘리제 궁 비서실장과 총리비서실장이 따로 창가 쪽에 자리 잡고 앉는다. 별로 크지 않은 방이어서 내각 장관들이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앉아서 회의를 하는 모양이 그려진다. 탁자에 마이크 시설은 없었다. 육성으로도 충분히 소리가 들릴만한 방이기 때문이다.
건물 1층에는 국가 공식 연회나 만찬이 열리는 ‘살 데 페트(Salle des Fete)’가 있다. 화려한 천장화와 샹들리에, 태피스트리로 꾸며진 연회장이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 당시 조성된 이 연회장은 붉은색과 황금색 컬러로 디자인 돼 있다.
테이블 위에는 최고급 도자기 식기 세트와 촛대, 꽃장식으로 국빈을 맞이하는 품격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역대 대통령 취임식 축하연과 외국 정상들과의 공식 만찬이 펼쳐지는 곳이다.
이 밖에도 엘리제궁에는 대통령 영부인의 집무실인 ‘살롱 블뢰(Salon Bleu)’, 대사들을 맞이하는 ‘대사방(Salon des Ambassadeurs)’가 있다. 대통령 전용 도서관(Bibliotheque)도 있다. 도서관에 있는 고색창연한 책꽂이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수아 미테랑, 샤를 드골 대통령의 공식 초상화를 찍은 장소이기도 하다.
엘리제궁의 야외 공간에는 정문 쪽에는 분수와 정원이 있어 산책을 할 수 있고, 뒷문 쪽 마당에는 역대 프랑스 대통령이 탔던 전용차량이 전시돼 있다. 시트로앵, 르노, 푸조 등 프랑스의 고유 브랜드 차량들의 클래식 모델부터 현대 모델까지 시대별로 볼 수 있다. 또한 대통령이 전시에 타는 군용트럭도 눈길을 끈다.
엘리제궁은 1722년 유명 건축가 아르망 클로드 몰레의 설계로 만들어졌다. 왕족과 귀족의 저택 및 별장으로 쓰였고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불렸다. 루이 15세는 애첩이었던 퐁파두르 후작 부인(Marquise de Pompadour)에게 선물했다. 그녀를 혐오하던 정적들은 엘리제궁의 정문에 ’왕의 매춘부가 사는 집‘이라고 써있는 팻말을 써붙였다고 한다.
이후 1808년 나폴레옹 황제로부터 나폴리의 왕으로 임명된 뮈라 장군이 ‘엘리제-나폴레옹 궁전’이란 이름으로 황제에게 헌납했다. ‘엘리제 궁(Le Palais de l'Élysée)’이라는 이름은 18세기 말에 근처의 샹젤리제 거리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샹젤리제(Champs-Élysées)는 ‘엘리제의 들판’이라는 뜻이다. 엘리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엘리시온’의 프랑스어식 표기로, 신들의 총애를 받은 영웅들이 지상의 삶을 마친 뒤에 들어간다는 축복 받은 땅이다.
나폴레옹 3세는 자신의 약혼녀인 외제니 드 몽티조에게 엘리제 궁전을 선물하기 위해 1853년에 건축가 조제프-외젠 라크루아를 시켜 전면 개축을 하였고 1867년에서야 끝난 대공사 결과, 오늘날 프랑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국가 원수의 공식 공관이 된 것은 제3공화국 때인 1874년부터였고, 제5공화국인 샤를 드골 대통령 취임(1958년)부터 대통령궁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대령이 반드시 엘리제궁에 거주해야 할 의무는 없다. 사회주의 대통령이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거의 사적 공간으로 대통령궁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그는 공식 업무가 끝나고 밤이 되면 그의 사택으로 돌아가기를 선호했다. 반면 후임자인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1995년에서 2007년까지 2번의 임기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엘리제 궁에 머물렀다. 특히 시라크 대통령은 대통령궁의 예산을 105% 증가시켜 연간 9000만 유로에 달하는 비용을 썼다. 그 중 매년 1백만 유로가 엘리제 궁에 초대받은 사람들과 마시는 와인 값으로 충당됐다. 사르코지 대통령도 사택에서 잠을 자고 엘리제궁의 집무실로 출퇴근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임기 중에 애인인 쥘리 가예의 아파트로 가기 위해 헬멧을 쓰고 스쿠터를 탄 채 엘리제궁을 몰래 빠져나가는 모습이 사진에 찍혀 스캔들을 낳기도 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