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애경 “조정안 못 받아들여” 조정위 “추가 협의” 정부 참여하는 ‘권고안’도 두 기업 부동의로 논의 멈춰 김이수 위원장 “피해 구제, 새 정부서도 노력해주길”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유족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무책임한 가습기살균제 살인기업 옥시와 애경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2022.4.6/뉴스1 © News1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 조정위원회(조정위)가 조정안에 동의하지 않은 기업들과 추가 협의에 나서기로 했다. 특히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내고서도 조정안 거부 의사를 밝힌 옥시레킷벤키저(옥시)에는 영국 본사 차원의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옥시와 애경은 조정 금액과 기업 간 분담 비율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조정안을 거부한 상태다. 조정위는 활동 기한인 이달 말까지 두 기업을 계속 설득할 계획이지만 합의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 11년 만의 조정안, 사실상 무산
김이수 조정위원장은 11일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조정안을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당사자들이 있어 조정안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두 기업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다만 “아직 조정 불성립을 판단하기보다는 활동 기한까지 조정 노력을 이어 가겠다”며 추가 협의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조정안은 옥시와 애경의 반대로 제동이 걸렸다. 두 기업의 분담 비율은 60%가 넘는다. 옥시는 약 5000억 원을 내야 한다. 나머지 7개 기업인 SK케미칼 SK이노베이션 LG생활건강 GS리테일 롯데쇼핑 이마트 홈플러스는 조정안을 받아들였다. 조정위는 “피해자의 50% 이상이 동의해야 조정안의 효력이 발생하는 데, 두 기업의 부동의 통보로 피해자 동의 절차도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 “평생 짊어질 고통 치유엔 턱없이 부족”
이달 말 조정위 활동이 끝나면 피해자 지원은 더욱 막막해진다. 활동 기한을 연장하려면 피해자 측과 기업들의 합의가 필요하다. 13일에 양측이 만나 조정 기간 연장을 논의할 예정이다. 조정안에 동의한 7개 기업도 분담 비율 조정에는 미온적인 상황이라 기업들이 조정 기간 연장에 동의할지는 불투명하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실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뒤 11년을 기다려 온 피해자들도 현재의 조정안에 불만이 적지 않다. 3월 말 기준 피해 등급을 받은 922명 중 초고도 판정을 받은 피해자는 15명(1.6%)에 불과하다. 744명(80.7%)은 경도~등급외 판정을 받았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터진 2011년 신생아였다가 올해 12세가 된 경도 등급 피해자가 받는 조정 금액은 1억7767만 원으로 책정됐다. 기존에 받은 구제급여가 전혀 없을 때만 이 금액을 전액 수령할 수 있다.
● 피해 구제, 새 정부 몫으로 넘어갈 듯
조정위는 피해자와 기업 간의 사적 조정을 넘어선, 정부가 참여하는 형태의 ‘권고안’도 제안했다. 향후 추가 피해 신청자에 대해선 정부가 구제급여를 통해 지원을 책임지는 내용이다. 조정안을 받아들인 피해자들도 구제급여 외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기업들이 향후 추가 분담금을 부담하지 않는 내용도 담았다. 조정위는 “이런 내용의 권고안을 정부와 논의 중이었지만, 기업의 조정안 거부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의가 멈춘 상태”라고 밝혔다.
조정위가 빈손으로 활동을 종료한다면 피해 배상은 5월 출범하는 새 정부의 몫으로 남겨지게 됐다. 김이수 위원장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는 특정 정부의 몫이 아니다. 어느 정부나 해결해야 할 과제다. 새 정부도 (문제 해결에) 협조적일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