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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와 ‘가짜’가 만나 진짜 인생을 찾다

입력 | 2022-04-12 03:00:00

뮤지컬 ‘쇼맨: 어느 독재자의~’
우연히 만난 괴짜 노인-마트 직원
‘타인 모방하는 삶’ 덧없음 깨달아



뮤지컬 ‘쇼맨: 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 배우’에서 훗날 자신이 모방하게 될 독재자를 처음 마주한 네불라. 국립정동극장 제공


미국 뉴저지주의 어느 소도시. 대형마트 직원인 한국계 입양아 수아가 수상한 괴짜노인 네불라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신을 사진작가라 속인 수아에게 네불라는 촬영을 의뢰한다. 촬영 과정에서 알게 된 네불라의 정체. 그는 미치광이 살인마로 알려진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였다.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1일 개막한 뮤지컬 ‘쇼맨: 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는 가짜 독재자와 가짜 사진작가가 만나 각자의 모습을 찾는 과정을 그린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 ‘레드북’을 만든 ‘한이박 트리오’(한정석 작가, 이선영 작곡가, 박소영 연출가)의 3년 만의 신작이다.

남 흉내를 잘 냈던 8세 소년 시절부터 극단에서 단역을 전전하던 청년, 독재자 대역으로 군중 연설을 담당했던 때까지…. 주인공 네불라를 번갈아 가며 연기하는 배우 윤나무, 강기둥은 나이를 초월한 연기로 한 남자의 인생을 펼쳐낸다.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수아(박란주, 정운선)는 스스로를 몸이 아픈 동생을 돌보는 보모쯤 된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인물. 직장에서도 병가로 공석이 된 상사의 직책을 맡고자 상사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좇으며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나간다. 타인을 모방하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수아는 자신이 혐오하는 네불라와 다르지 않다는 걸 차츰 깨닫는다.

작품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넘버 ‘인생은 내 키만큼’의 무대 연출은 극 전체를 함축한다. 심해가 차오르는 듯한 청색 조명이 전신을 감싸면 네불라는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허우적댄다. 이때 울려 퍼지는 넘버 ‘인생은…’ 속 가사 “인생은 내 키만큼의 깊은 바다”에 대해 한정석 작가는 “아무리 키를 뛰어넘는 깊이의 바다여도 애써 뛰어올라야 숨쉴 수 있다는 삶의 굴레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리지널’ ‘굿 걸’ 등 넘버는 금세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로 귀에 꽂힌다. 뮤지컬에선 생소한 트럼펫을 포함해 바이올린, 첼로 등 6인조 관현악 밴드가 라이브 연주를 선보이는 것도 매력이다. 이선영 작곡가는 “네불라가 느꼈을 쓸쓸함과 트럼펫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결론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악기가 됐다”고 말했다. 5월 10일까지, 전석 7만 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