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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아들 죽여” “죽은 여성 곁 피임기구”…생존자들이 증언하는 ‘부차 학살’

입력 | 2022-04-12 23:15:00




6살 소년 블라드 타뉴크가 4일 부차 집 마당에 묻힌 엄마의 무덤을 바라보고 있다. 소년의 엄마는 러시아군 점령 기간 스트레스와 영양부족으로 사망했다. 부차=AP 뉴시스


뉴욕타임스(NYT)는 11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부차 지역에서 최근 철수하기 전까지 약 한 달 넘게 이 지역을 점령하며 민간인에게 자행한 고문, 강간, 학살 등 전쟁범죄에 관한 생존자, 목격자들의 증언을 탐사보도로 전했다. NYT는 민간인들은 전쟁과 전혀 관련 없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무차별하게 살해됐다고 전했다.

지난달 5일 오후 이반 씨는 아들과 잠시 집 밖 산책에 나섰다가 눈앞에서 아들이 러시아군의 총에 맞는 것을 봤다.

“그들이 내 옆에 있던 아들을 쐈어요. 나를 쐈어야 했는데…. 아들은 온종일 신음하다 다음날 아침 8시20분에 하늘로 떠났어요.”

집 앞마당에 아들을 묻은 그는 “자식을 묻는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예요. 원수에게도 이런 저주는 못할 거예요”라고 했다. 이반 씨는 “아들에게는 8살, 1살짜리 아들과 딸이 있어요. 손자들 눈을 쳐다볼 수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 시신 수습도 못한 채 한 달 넘게 방치


부차는 수도 키이우와 인접해 키이우로 통근하는 이들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다. 처음 러시아군이 쳐들어왔을 때는 우크라이나 군이 이들을 물리쳤다. 약 20대의 러시아 장갑차가 모두 불탔고 러시아군들은 숲 속으로 줄행랑을 치기도 했다. 하지만 며칠 뒤 정비를 가다듬고 돌아온 러시아군은 더 폭력적으로 변했다. 이들은 부차의 한 주상복합 건물에 기지를 마련한 뒤 건설 중인 고층 건물 위에 저격수를 뒀다. 주민들은 저격수는 거리에 뭐든 움직이는 게 있으면 무차별로 쐈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은 가가호호 수색하면서 이곳 주민들에게 밖으로 나오지 말 것을 명령했다. 러시아군 사령관은 “우리는 (나오는 이들에게) 발포를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며 주민들에게 밖으로 나오지 말 것을 경고하고 다녔다.

은퇴 교사인 앤티 류다 씨는 집 문을 열다가 그 자리에서 총을 맞고 사망했다. 문에 낀 사체는 뒤틀린 상태로 한 달 넘게 방치됐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던 그의 여동생 니냐 씨는 이 집 주방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니냐 씨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 사연은 아는 사람조차 없다. 이들의 이웃 세르히 씨는 “러시아군이 이곳을 점령한 뒤 보이는 모든 사람을 쏴서 아무도 (사체에) 가지 못했다. 어떻게 할머니를 죽일 수 있냐”고 분개했다.


○ 집에 남은 건 약탈 살인 강간의 흔적


군인들은 휴대전화나 컴퓨터를 빼앗아 갔다. 또 자신들이 마련한 군기지 주변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집을 떠나라고 위협했다. 테티아나 마사노베츠 씨(65)는 “군인들이 내 지팡이를 건네면서 떠나라고 하면서 뭐든 다 훔쳐갔다”고 말. 군인들은 마사노베츠 씨 집 방 중 하나를 아예 화장실로 쓰며 더럽혔다.

볼로디미르 쉐피코 씨(66) 역시 3월 초 러시아 장갑차가 뒷담장을 밀고 들어오자 아내와 도망을 갔다가 러시아 군인들이 철수한 뒤에야 집에 돌아왔다. 집은 엉망이 돼있었는데 마당 지하창고에는 나체의 여자 시체 위에 모피 코트가 덮여있었다. 여성은 머리에 총을 맞았고 땅에는 총알 2개가 있었다. 이후 경찰이 출동해 조사를 했는데 집안에서는 사용한 흔적이 있는 콘돔이 발견됐다.


○ 탈환 후에야 수습된 시신, 10일까지 360구


11일 부차의 한 임시 공동묘지에서 경찰 감식반이 러시아군 점령 기간동안 사망한 이들의 시신을 살피고 있다. 부차=AP 뉴시스


3월말 우크라이나 군이 격전 끝에 부차를 탈환한 뒤에야 길거리에 방치됐던 사체들을 수습될 수 있었다. 이후 이달 2일까지 약 100구의 시체가 수습됐는데 약 일주일 후인 10일까지 그 수는 360구로 늘어났다. 시 관계자들은 이 중 10구는 어린이 시신이었다고 전했다.

이 시신 360구 중 250구 이상은 시신에서 총알이나 포탄 파편이 발견돼 전쟁 범죄 수사 관련 증거로 쓰이고 있다. 그 외에 다른 시신들은 추위, 기아, 약이나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사망했다. 부차 검찰 관계자는 “쏟아지는 전쟁 범죄 관련 제보를 바탕으로 경찰이 수색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전쟁 범죄 피해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