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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뉴욕 지하철, 연막탄 터진후 권총 탕탕탕… 최소 29명 부상

입력 | 2022-04-14 03:00:00

60대 흑인 방독면 쓴후 연막탄 던져… 40~50명 탄 객차서 2분간 33발 난사
피투성이 승객들 열차 멈춘후 탈출, 10명 총상… 생명 위독 피해자 없어
범인, 현장서 달아나 시민들 불안… 하루 전 영상선 “사람 죽이고 싶다”



희뿌연 연기로 가득 찬 역사 바닥에 피가 얼룩져 있고 열차에서 빠져나온 시민들이 황급히 대피하고 있다. 당국은 이 사건으로 최소 29명이 다쳤으나 사망자는 없다고 밝혔다. 뉴욕=AP 뉴시스·소셜미디어 영상 캡처


12일 미국 최대 도시 뉴욕의 출근길 지하철 객차 안에서 ‘묻지 마 범행’으로 추정되는 총격 사건이 벌어졌다. 사망자는 없지만 최소 29명이 부상을 입었고 범인이 아직 붙잡히지 않아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당국은 흑인 남성 프랭크 제임스 씨(62·사진)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5만 달러(약 6150만 원)의 현상금까지 내걸었다.

뉴욕경찰(NYPD) 출신인 에릭 애덤스 시장은 1월 취임 후 줄곧 강력범죄 근절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도 올 들어 이달 3일까지 뉴욕에서는 296건의 총격 사건이 벌어져 작년 같은 기간(260건)보다 늘었다. 중부 아이오와를 방문 중인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 사건에 관한 긴급 보고를 받고 범인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밝혔다.
○ 33발 난사…바닥 피로 흥건
이날 오전 8시 24분경 뉴욕 브루클린의 지하철 ‘N’ 노선에서 맨해튼 방향으로 향하던 열차가 브루클린 선셋파크 36번가 역으로 진입할 무렵 객차 안에서 갑자기 희뿌연 연기가 퍼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잇따라 총성이 울렸고 열차 안은 사람들의 비명 소리로 가득 찼다. 범인을 똑똑히 봤다는 승객 피팀 젤로시 씨는 뉴욕타임스(NYT)에 “건설 인부처럼 입은 남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단순히 마약에 취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상한 말을 내뱉더니 총을 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12일 무차별 총격이 벌어진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지하철 객차 안에서 시민들이 부상을 입고 누운 승객을 응급처치하고 있다.

승객의 증언에 따르면 이 남성은 가방에서 방독면을 꺼내 쓴 후 연막탄을 던졌다. 연기가 퍼지자 마구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열차가 36번가 역에 멈추자 해당 칸의 승객들은 급히 열차를 빠져나가 도망가거나 맞은편 ‘R’ 노선 열차에 탑승했다. 승강장의 다른 시민들은 열차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빠져나오는 승객들을 발견한 후 사태의 위중함을 파악했다.

해당 객차에 있었던 야브 몬타노 씨는 CNN에 “당시 열차 안에 40∼50명 정도가 있었다. 바닥이 피로 흥건했다”고 전했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 열차와 승강장 바닥이 상당 부분 피로 얼룩져 있다.

범인 바로 옆에 앉았다는 다른 승객 후라리 벵카다 씨 또한 인근의 임신부를 도우려다 총을 맞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 여성이 ‘아기를 가졌다’고 해서 그를 보호하기 위해 끌어안았는데 뒤에서 계속 몰려나오는 사람들에게 밀렸다. 그 순간 무릎 뒤쪽에 총을 맞았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그는 살면서 최악의 고통을 느꼈다며 “다시 지하철을 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현재까지 29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중 10명은 총상을 입었지만 생명이 위독한 피해자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현장에서 9밀리 권총 탄환이 총 33발 발사됐다”며 “권총, 3개의 탄창, 4개의 연막탄 및 손도끼를 수거했다”고 밝혔다.
○ 용의자, 사건 전날 “사람 죽이고 싶다”
경찰은 현장에서 신용카드 및 자동차 열쇠를 발견한 후 이 물품의 주인인 제임스 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그는 범행 하루 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트럭 한 대를 빌린 뒤 브루클린으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그의 사진을 공개하고 현상금도 걸었다. 그의 자세한 신원, 범행 동기와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NYT에 따르면 제임스 씨는 사건 전날인 11일 유튜브 동영상에서 “나는 사람을 죽이고 싶고,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싶다”고 밝혔다. 다른 동영상에서는 “나는 증오, 분노, 비통함으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인종 문제를 거론하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흑인들이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납득할 수 없는 장광설도 펼쳤다.

경찰은 사건 직후 ‘테러’로 분류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곧 “어떠한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을 바꿨다. 사건 현장은 브루클린 내 차이나타운과 멀지 않다. 아직 아시아계 증오 범죄와 관련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사건을 보고받은 바이든 대통령은 법무부와 연방수사국(FBI)에 뉴욕경찰과 협조하라고 지시했다. 주변 학교들에는 대피 명령을 내려 학생들을 학교 안에 머물게 하고, 외부인의 교내 출입을 금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