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물 몰라 언박싱 순간 복권긁기 같은 떨림” ‘랜덤박스’ 앱-대기업 등 속속 가세… 당첨 물건 교환-선물하기도 가능 “미끼상품으로 사행성 조장” 지적도
랜덤박스 상품으로 소개된 수백만 원대의 명품백들. 랜덤박스 애플리케이션 화면 캡처
회사원 안수연 씨(37)는 최근 친구로부터 “명품백이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5000원짜리 ‘랜덤박스’를 선물받았다. 스마트폰 앱(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선물코드를 넣으니 게임 화면처럼 랜덤(무작위) 상품이 든 박스 1개를 언박싱(개봉)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수백만 원대 고액 상품 당첨 소식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걸 보고 기대를 품었지만, 언박싱 결과는 7500원짜리 방향제. 그는 “언박싱 순간 복권 긁기 같은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며 “구매가 이상의 상품을 받는 점에선 오히려 복권보다 낫다”고 했다.
개봉 전까지 내용물을 알 수 없는 상태로 파는 ‘랜덤쇼핑’ 서비스가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 인기다. 뽑기 같은 재미를 주는 데다 당첨 물건을 교환하거나 선물하는 기능도 추가되며 게임처럼 쇼핑을 즐기는 이도 늘고 있다.
카카오페이는 스마트폰 앱에서 5가지 아이템(재료)을 모으면 간식과 포인트를 지급하는 랜덤박스 행사를 12일 시작했다. 친구에게 앱 초대 링크를 보내면 두 명 모두 아이템을 1개씩 무작위로 받는다. 아이템은 친구와 교환하거나 선물할 수 있다. 카카오페이는 “아이템 주고받기와 모으기를 게임처럼 받아들이는 젊은층이 많다”고 했다.
대기업도 랜덤박스를 활용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2월 갤럭시S22 사전예약 당시 고객들에게 3만 원 상당의 사은품을 랜덤박스에 넣어 주는 행사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갤럭시 워치 등 고가 사은품 당첨을 기대하는 고객들이 언박싱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며 화제가 됐다.
랜덤박스 인기에는 쇼핑에서 즐거움과 재미를 추구하는 MZ세대 특성이 반영됐지만, 사행성 마케팅을 조장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랜덤박스 앱 대부분은 수백만 원대 고가 상품을 내걸지만 정확한 수량 등은 공개하지 않는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온라인 랜덤박스가 소비를 놀이로 생각하는 현상과 함께 필요 없는 물건은 물물교환해 자원낭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면서도 “소비자 기만이 없도록 고가의 미끼 상품이 제대로 당첨되는지 ‘경품 규제’처럼 눈여겨봐야 한다”고 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