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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역할놀이 하자는 ‘대학생 아바타’… 잡고보니 성착취 노린 30대男

입력 | 2022-04-14 03:00:00

경찰, ‘아바타 성범죄’ 30대 구속




“몇 살이니? 난 21세 멋진 대학생 오빠야.”

올해 초 네이버의 메타버스(디지털 가상 세계) 서비스 ‘제페토’. 청소년 A 양이 접속하자 아이돌처럼 깔끔한 외모의 아바타가 접근하더니 자신을 이같이 소개했다. 여러 차례 대화를 이어가던 중 그는 밸런타인데이라며 초콜릿 기프티콘을 보내왔다. 그러나 경찰 수사 결과 이는 ‘온라인 그루밍(심리적 지배)’을 통해 성착취물을 제작하려는 30대 남성 B 씨의 마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북부경찰청은 제페토에서 만난 아동 청소년의 성착취물을 제작한 혐의 등으로 B 씨를 2일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1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B 씨는 제페토에 가입한 뒤 미소년 같은 외모로 아바타를 치장하고 피해자들에게 접근했다. 이어 ‘커플 사진’을 찍어준다고 하거나 “역할 놀이를 하자”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환심을 사기 위해 유료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보내기도 했다.

B 씨는 피해자들과 길게는 1, 2개월간 연락하며 친분을 쌓았다. 그리고 ‘몸을 찍은 사진과 영상을 보내 달라’고 요구하거나 메신저를 통해 전화를 걸어 성적 대화를 했다. 자신의 신체를 찍은 영상을 피해자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B 씨는 이런 수법으로 메타버스에서 최근까지 약 1년간 초등생부터 고교생까지 아동 청소년 11명의 신체 사진 등을 받아 성착취물을 제작해 보관했다.

경찰 관계자는 “선물을 주면서 관계를 돈독하게 한 뒤 피해자들이 노출 사진과 영상을 보내도록 만드는 B 씨의 수법은 전형적인 온라인 그루밍”이라고 설명했다. 아동들의 사진이나 영상이 유포된 정황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제페토는 사실상 익명으로 가입할 수 있는 탓에 검거도 쉽지 않았다. 경기북부청 사이버범죄수사2대 사이버성폭력수사팀은 메타버스 성범죄 문제를 지적한 3월 8일자 동아일보 보도를 보고 B 씨 수사에 착수했다. B 씨는 아동 청소년들과 나눈 성 착취 대화 내용을 캡쳐해 자신의 제페토 프로필에 게시했는데, 경찰은 이를 보고 피해자가 다수일 것으로 예상하고 검거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지난해 아동 청소년 대상 성범죄 수사에 한해 도입된 ‘위장수사’를 활용해 B 씨의 혐의를 포착한 경찰은 추적 2주 만인 지난달 31일 B 씨를 한 주택가 반지하방에서 붙잡았다. B 씨가 전입신고를 하지 않고 거주했던 탓에 소재 파악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검거 당시 B 씨의 모습은 아바타와는 딴판이었다. 일용직으로 일하는 B 씨의 집은 먹던 음식과 던져 놓은 옷, 성인용품 등으로 어질러져 있었다고 한다. B 씨는 제페토에서 총 5개의 계정을 사용했고, 계정이 정지된 뒤에도 새 계정으로 재가입해 아동 청소년에게 접근했다. B 씨는 혐의를 부인하다가 경찰이 증거를 들이밀며 추궁하자 범행을 인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성범죄자가 메타버스에서 화려한 외모의 아바타로 아동 청소년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성착취까지 이어질 수 있으므로 부모와 아이들의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위장수사 노하우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디지털 성범죄를 적극 수사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