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낙마하자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이재오 특임장관을 급히 불렀다. 후임 총리 후보자를 물색해야 하는데 야당의 ‘동의’를 받아오라는 특명이었다. 난감해진 이재오는 야당 원내대표 박지원을 찾았다. ‘이재오-박지원’ 채널이 본격 가동됐다.
▷야당은 호남 출신인 김황식 감사원장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황식 총리 카드로 인사청문회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후임 국방부 장관도 야당이 추천한 호남 출신 김관진을 선택했다. 야당 요구를 수용하면서 이명박 정부는 임기 후반기에 비교적 순항할 수 있었다. 대통령과 야당 지도부를 잇는 ‘핫라인’ 역할을 한 특임장관의 역할이 돋보였다는 평가다.
▷특임장관은 ‘작은 정부’를 내건 김대중 정부에서 폐지된 정무장관을 되살린 것이다. 과거 ‘무임소(無任所) 장관’이었는데 전두환∼김영삼 정부에서 정무장관으로 불렸다. 정무장관의 역할은 대통령의 메시지를 갖고 여야와 소통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알아야 하니 역대 정무장관은 ‘실세’들의 몫이었다. 전두환 정부에서 노태우, 노태우 정부에서 김윤환, 김영삼 정부에선 민주계 김덕룡, 서청원이 정무장관을 했다. 이재오는 이명박 정부 2인자로 불렸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정무장관 부활 논의가 있었다. 2년 전 4·15총선 직후 문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다. 당시 야당 원내대표 주호영은 “이명박 정부 특임장관으로 일할 당시, 법안의 국회 통과율이 4배나 올라갔다”며 정무장관 신설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즉시 정무장관 신설 검토를 지시했다. 나중에 주호영은 “적극적으로 요구한 것은 아니다”라고 물러섰고, 청와대도 정무장관직 논의를 진전시키지 않았다. 거대 여당이 됐으니 야당 협조가 주무인 정무장관 역할이 그렇게 절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윤석열 새 정부에서 정무장관 신설을 검토한다고 한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없앤다면 그 역할을 대신할 정무장관직을 부활하는 방향은 맞다. 하지만 장관직 검토에 앞서 야당과의 협치 의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자칫 정무장관 신설이 장관 자리 하나 더 늘리는 위인설관(爲人設官)의 편법으로 변질되어선 안 될 일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