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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연욱]정무장관

입력 | 2022-04-14 03:00:00


2010년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낙마하자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이재오 특임장관을 급히 불렀다. 후임 총리 후보자를 물색해야 하는데 야당의 ‘동의’를 받아오라는 특명이었다. 난감해진 이재오는 야당 원내대표 박지원을 찾았다. ‘이재오-박지원’ 채널이 본격 가동됐다.

▷야당은 호남 출신인 김황식 감사원장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황식 총리 카드로 인사청문회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후임 국방부 장관도 야당이 추천한 호남 출신 김관진을 선택했다. 야당 요구를 수용하면서 이명박 정부는 임기 후반기에 비교적 순항할 수 있었다. 대통령과 야당 지도부를 잇는 ‘핫라인’ 역할을 한 특임장관의 역할이 돋보였다는 평가다.

▷특임장관은 ‘작은 정부’를 내건 김대중 정부에서 폐지된 정무장관을 되살린 것이다. 과거 ‘무임소(無任所) 장관’이었는데 전두환∼김영삼 정부에서 정무장관으로 불렸다. 정무장관의 역할은 대통령의 메시지를 갖고 여야와 소통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알아야 하니 역대 정무장관은 ‘실세’들의 몫이었다. 전두환 정부에서 노태우, 노태우 정부에서 김윤환, 김영삼 정부에선 민주계 김덕룡, 서청원이 정무장관을 했다. 이재오는 이명박 정부 2인자로 불렸다.

▷정무장관과 비슷한 역할을 한 직책이 청와대 정무수석이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은 정무수석과 만나는 것을 꺼렸다. 대통령 직속 참모라는 성격이 강해서다. 대신 동료 의원으로 지냈던 정무장관을 상대하는 것이 편했다고 한다. 그래서 정무장관은 야당 의원들의 ‘민원’ 창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역구 예산부터 인사 부탁, 더 은밀한 제안도 오갔다는 후문이다. 자연스럽게 ‘정무장관은 야당, 정무수석은 여당’으로 역할이 분담됐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정무장관 부활 논의가 있었다. 2년 전 4·15총선 직후 문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다. 당시 야당 원내대표 주호영은 “이명박 정부 특임장관으로 일할 당시, 법안의 국회 통과율이 4배나 올라갔다”며 정무장관 신설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즉시 정무장관 신설 검토를 지시했다. 나중에 주호영은 “적극적으로 요구한 것은 아니다”라고 물러섰고, 청와대도 정무장관직 논의를 진전시키지 않았다. 거대 여당이 됐으니 야당 협조가 주무인 정무장관 역할이 그렇게 절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윤석열 새 정부에서 정무장관 신설을 검토한다고 한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없앤다면 그 역할을 대신할 정무장관직을 부활하는 방향은 맞다. 하지만 장관직 검토에 앞서 야당과의 협치 의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자칫 정무장관 신설이 장관 자리 하나 더 늘리는 위인설관(爲人設官)의 편법으로 변질되어선 안 될 일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