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과 관련해 1월 10일부터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동아일보 법조팀은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매주 진행되는 재판을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이와 함께 여전히 풀리지 않은 남은 의혹들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계획입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
“대장동 개발사업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남욱 변호사가 유동규 씨에 대해 ‘이재명 전 성남시장의 선거대책본부장 출신이고 성남시에서 상당히 영향력이 크다’고 했다” (대장동 아파트 분양대행업체 대표 이모 씨)
“유동규 씨가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선거운동을 해서 가까운 사이여서 성남도시개발공사 실세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한 것 맞나?” (검찰)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준철) 심리로 열린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사건 22차 공판에 대장동 사업으로 지어진 아파트 분양대행을 독점한 분양대행업체 대표이자 박영수 전 특별검사의 인척인 이모 씨가 증인으로 출석해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이 씨는 이날 재판에서 토목건설업체 대표 나모 씨에게 2014~2015년경 20억 원을 빌렸다가 4년 뒤 100억 원을 건넨 자금 거래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100억 원을 건넨 경위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이 씨는 대장동 아파트 분양대행을 맡게 된 배경부터 이야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장동 개발사업 민간사업자인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관계사 천화동인 4호 소유주인 남욱 변호사가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가 가까운 사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한 것입니다.
대장동 개발사업 내부자들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까지 전해 듣고 사업에 참여한 이 씨는 어째서 나 씨에게 20억 원을 빌려놓고서 100억 원을 건네게 되었을까요.
● “대장동 사업 폭로하겠다고 협박해서 100억 건네”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
이 씨가 남 변호사를 처음 만난 건 2012~2013년 부동산 관련 모임이었습니다. 이후 2014년 남 변호사가 대장동 개발사업을 추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업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2012년 자신의 인척인 박 전 특검의 소개로 화천대유의 대주주인 김만배 씨를 만난 이 씨는 2015년 김 씨에게 대장동 개발사업에 대한 컨설팅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남 변호사는 이 씨에게 초기 사업비로 50억 원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결국 이 씨는 남 변호사에게 42억5000만 원을 지급했는데, 자금 조달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중 20억 원을 토목건설업체 대표 나 씨에게 빌리면서 악연이 시작됐습니다. 이 씨는 나 씨에게 돈을 빌리면서 ‘나 씨가 20억 원을 내고, 대신 대장동 개발사업 토목사업권을 500억 원 이상 보장해준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2014년 10월 7일 작성했습니다.
● 사업 성공 확신 갖게하기 위해 남욱 소개도
검찰은 정 변호사가 이 만남에 참석한 이유에 대해 추궁했습니다.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민관합동 개발 방식으로 대장동 개발사업을 추진하는데, 사전에 민간사업자인 남 변호사와 교감했다면 불법적으로 화천대유에 이익을 몰아준 구조가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이 씨는 “정 변호사를 데리고 온 이유는 나 씨에게 ‘민간개발이 아니라 사업자 공모 방식을 거쳐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주도하는 개발이 되더라도 (나 씨에게) 토목사업권을 줄 수 있다’는 신뢰를 주기 위해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검찰은 “당시는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대장동 사업을 민영개발에만 맡기지 않겠다고 발표한 시점이었다”고 했습니다.
남 변호사가 대장동 개발사업 관련 과거 검찰 수사 등으로 인해 구속되자 일이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씨는 “사업권은 김만배 씨에게 넘어갔고 김 씨에게 ‘나 씨는 그전부터 알던 사이고 토목사업권을 나 씨에게 반드시 줘야 한다’고 했지만 김 씨는 ‘내가 책임질 이유 없다. 못해준다’고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씨가 나 씨에게 20억 원을 반환하지 못하자 나 씨는 2016년 6월 세 차례의 내용 증명을 보냈습니다.
특히 나 씨는 남 변호사와 이 씨가 대장동 민간사업자인데, 사업자 선정 전에 성남도시개발공사 담당자인 정 변호사를 만났다는 것이 ‘결탁’이라고 문제 삼았습니다. 재판에서 이 씨가 증언한 내용에 따르면 나 씨는 이 씨에게 “당신에게 준 20억 원은 쌈 싸먹은 걸로 생각하고 안 받을테니 너희도 한번 죽어보라”며 “당신은 사기꾼이니 업계에서 매장시킬 것이고, 정 변호사, 유 전 직무대리 등 성남도시개발공사와 민간사업자의 사전 교감에 대해 문제 삼아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이 씨는 나 씨에게 100억 원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 씨는 남 변호사가 성남도시개발공사와 사업자 선정 이전부터 사적으로 만나 ‘우리가 사업자로 선정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과 유 전 직무대리가 가깝기 때문에 성남도시개발공사에서 ‘실세’가 될 것이라는 말까지 들은 나 씨가 이를 폭로하기 시작하면 ‘대장동 일당’은 더 일찍 수사를 받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 정영학 녹음파일 30시간, 법정서 재생하기로
한편 이날 재판에서는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핵심 증거인 정영학 회계사의 녹음파일을 공개하겠다는 결정이 나왔습니다. 재판부는 “녹음파일에 대한 증거조사를 이달 25일부터 진행한다”며 “예상되는 재생 시간은 30시간 정도인데 하루 6시간씩 재생하면 (녹음파일 증거조사에) 다섯 차례 재판 기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이 녹음파일은 피고인 정 회계사가 2019~2020년 김 씨, 남 변호사, 유 전 직무대리와 대화한 것을 녹음했다가 지난해 검찰에 제출한 것입니다. 그동안 언론 보도를 통해 일부가 드러났지만 이 녹음파일이 법정에서 재생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다음 재판은 18일 열립니다. 이날 증인으로는 박 전 특검과 같은 법무법인 강남 소속으로 투자자금 유치를 담당한 천화동인 6호 소유주 조현성 변호사가 출석합니다.
● 곽상도 “금품 요구한 적 없고 화천대유 몰랐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곽 전 의원은 지난달 31일 2차 공판준비기일 때와 마찬가지로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곽 전 의원은 “이 사건 공소사실은 증거와 배치된다”며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가 수원지검에서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을 때 2014년 12월부터 2015년 2월까지 내 법률사무소에 찾아와 알게 됐는데 이때는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민정수석)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장동 사업에 관여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편 검찰 공소장을 통해 김 씨가 곽 전 의원의 아들 병채 씨(32)에게 퇴직금 및 성과급 50억여 원 외에도 사택과 전세자금을 제공했던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검찰은 김 씨가 현직 의원이었던 곽 전 의원으로부터 개발사업과 관련한 편의를 제공받길 바라고 곽 씨에게 전세자금 등을 지원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곽 전 의원에 대한 다음 재판은 이달 27일입니다. 이날 재판에는 정 회계사가 증인으로 출석해 곽 전 의원과 대장동 사업에 대해 증언할 예정입니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