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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쁨을 온전히 즐기는 일[내가 만난 名문장/이안리]

입력 | 2022-04-18 03:00:00

이안리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자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해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올리브 키터리지’ 중



얼마 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이 책에 실린 단편을 다시 읽었다. 제목은 ‘작은 기쁨’. 깨끗한 문장에 여러 번 연하게 밑줄을 그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을 읽을 때면 매번 새로운 문장을 만난다. 나는 사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문장을 좋아하고, 그런 문장은 내가 가진 책 가운데 올리브 키터리지에 가장 많다.

문장을 옮겨 적다가 ‘소확행’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그 말을 즐겨 쓰던 사람들은 이 작가의 문장을 삶에 반영해 온 것 아닐까. 소설 속에서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올리브라는 인물을 따라가다 보면 기쁨을 온전히 즐기는 일에도 내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기쁨은 안전하지만 조용하다. 때로는 너무 사소해서 큰 기쁨이 요구하는 인내만큼 까다로운 관심을 요구한다. 책을 읽다가 밑줄을 긋고 종이 가장자리를 접는 것처럼, 날마다 다른 모양의 즐거움에 특별한 표시를 해둬야 할지도 모르겠다. 전화를 받고 문장을 고르고 짧은 원고의 내용을 정리하는 동안 내가 지나치지 않으려고 노력한 작은 기쁨들을 기록해 봤다. 한기를 느낄 때 타이밍 좋게 무릎 위로 올라와 준 고양이들, 직접 갈아서 얼린 레몬으로 만든 레모네이드의 청량함, 새로 이사 온 집 앞 놀이터에서 발견한 깨끗한 철봉, 두 개의 그네…. 요즘 내가 붙잡고 싶은 건 이렇게 작고 안온한 장면들이다. 어차피 드물게 찾아오는 큰 기쁨은 웬만해선 잊히지 않을 테니까.


이안리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