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020년 3월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 내리는 ‘빅 컷’에 나서자 생명보험사들은 즉각 보험료를 인상했다. 당시 보험료를 올린 근거는 금리 인하 때문에 생보사가 보험료를 채권에 투자해 얻을 수 있는 기대수익, 즉 예정이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일부 생보사는 보험료가 곧 오를 테니 서둘러 보험에 들라는 ‘절판 마케팅’까지 했다. 생보사 입장에서 2년 전 저금리는 가입자도 늘리고, 보험료도 올린 일석이조의 기회였다.
▷2020년 상반기 기준금리가 0.75%포인트 떨어진 뒤 생보사별 보험료는 5∼10% 올랐다. 반면 올 들어 기준금리가 0.5%포인트 오른 뒤에는 보험료에 별 변화가 없다. 금리와 보험료의 관계를 돌이켜보면 금리 인상기에는 기대수익이 오르는 만큼 보험료를 내리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대다수 생보사는 금리가 오른 것만 보고 보험료를 인하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보험사들이 그때그때 다른 기준으로 금리 움직임에 반응하고 있다.
▷금리 관련 보험사들의 이중잣대는 은행들이 금리 인상기 예금금리를 찔끔 올리고 대출금리를 대폭 올리는 행태와 비슷하다. 다만 은행권의 예대마진 영업은 이미 널리 알려져 당국의 집중 모니터링 대상이 되는 반면 보험사의 예정이율 조정은 사각지대에 있어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생보사들은 재무 상태 악화, 내년 새 회계기준 도입 등 보험료를 동결해야 하는 갖가지 논리를 만들고 있다. 실적 잔치 때만 해도 장밋빛이었던 보험사의 미래가 보험료 인하 압박에 잿빛으로 변한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은 “생보사의 자본 확충이 시급하며 가격은 기업의 자율에 맡길 영역”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보험료 동결의 명분인 새 회계기준은 이미 2017년부터 예고된 제도다. 지금 생보업계와 당국의 태도는 5년 동안 상품 구조조정에 손을 놓고 있다가 뒤늦게 소비자더러 부담을 떠안으라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금리 등락에 대해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보험사, 이들을 감싸고도는 금융당국 모두 소비자가 빠진 한국판 관치금융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