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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으면 ‘쌀가마니’를 떠올려라[핫피플의 마음처방]

입력 | 2022-04-19 03:00:00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많은 이들의 아픔을 엿봤기에 나는 안다. 모두들 화려한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지만 아픔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상처는 흔히 가까운 곳으로부터 온다. 부모나 직장 상사, 지인 등이 무심코 건넨 폭언, 차별, 비하가 반복되면 자존감이 하락해 다른 관계까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런 내면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음 처방전은 ‘쌀가마니 요법’이다. 인생을 항해에 비유한다면 마음에 쌓인 상처들을 선적한 쌀가마니라고 생각해 보자. 문제는 그냥 쌀이 아닌 ‘썩은’ 쌀이라는 것이다. 내 선박 창고에 쌓여 짐이 돼버린 쌀가마니들을 다음 중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①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꺼내서 곱씹는다. ②잘 간직했다가 자식에게 물려준다. ③준 사람에게 돌려준다. ④더 깊숙이 숨겨 둔다. ⑤바다에 떠나보낸다.

많은 사람들이 ①번을 택해 머릿속에서 과거를 반복 재생하며 억울함을 다시 경험한다. 그러나 썩은 쌀은 먹을수록 탈만 날 뿐이다. ②번을 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자칫 방심하면 그대로 대물림할 수도 있다. 우리에겐 부모나 상사의 부정적인 부분도 내재화해 따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③번이 끌린다고? 그러면 던져주고 되받는 악순환에 빠질 뿐이다. ④번을 선택한 이들은 나름 잘 살아가고 있는 듯하지만, 선박이 폭풍을 맞닥뜨려 힘겨울 때 무거운 짐 때문에 항해에 어려움을 겪는다.

지나영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소아정신과 교수

그렇다. 현명한 선택은 바로 ⑤번이다. 이 ‘떠나보내기’는 오롯이 나를 위한 선택으로, ‘용서’와는 조금 다르다.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원망, 분노, 두려움을 충분히 느끼고 보듬어준 다음에, 내 인생에 짐이 되는 것들을 유유히 ‘놓아 보내는’ 것을 뜻한다. ⑤번을 실천하기 위한 1단계는 ‘아픔 인식’과 ‘표현’이다. 자신에게 상처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은데, 아픔의 뿌리를 찾아 배 밑바닥 창고에 있는 쌀가마니를 갑판으로 올려야 한다. 지속적으로 상처를 주는 이에게는 “선을 지켜 달라”고 표현해야 하고, 그래도 변화가 없다면 상대와 정서적,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

2단계는 ‘쌀가마니와의 이별’이다. 심호흡을 하면서 눈을 감고 갑판 위에 높게 쌓인 쌀가마니를 시각화하자. 그리고 심호흡 한 번에 쌀가마니를 하나씩 떠나보내자. 흔들리던 배가 점차 안정을 찾고, 마침내 말끔해진 선박에서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감정을 만끽하자. 물론 한번에 상처를 내려놓기란 어렵다. 상처를 인식하고 표현한 뒤, 상처의 굴레에서 나를 놓아주는 연습을 반복하는 게 필요하다.

※ 지나영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2020년 10월 유튜브 채널 ‘닥터지하고’를 개설해 정신건강 정보와 명상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4월 기준 채널의 구독자 수는 약 6만5000명이다. 에세이 ‘마음이 흐르는 대로’의 저자이기도 하다.
지나영 교수의 ‘상처치유-쌀가마니 요법’(https://youtu.be/0868mzRQXPw)


지나영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소아정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