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 달고 사는 현실” “세상은 폭행, 절도같이 간단한 사건만 있는 게 아냐” “공판 참여 검사가 수사 참여 않으면 흠결 생길 우려”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추진과 관련해 “현재 검수완박에 누구보다 반대하는 건 경찰”이라는 현직 경찰의 주장이 온라인에 올라와 눈길을 끌고 있다.
18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경찰청 게시판에 “현직 경찰”이라며 글을 올린 A 씨는 “현재도 수사권 조정 이후 불필요한 절차가 너무 많아져 업무 과중으로 수사 지연이 심각한 수준이다. 현재 수사관 한 명당 자기 사건 50건 ~200건씩 달고 있고, 수사부서 순번 정해서 탈출할 정도로 수사기피 심각하다”며 “수사 베테랑들 도저히 못 해 먹겠다고 타 부서로 다 도망가고 있고, 수사관들 사이에 ‘수사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게 지금 수사부서의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 사람들 성격 급해서 일주일만 지나도 수사진행사항 독촉하고 난리 치는데 실상은 최소 50명~200명이 대기 중이고, 1~2주는커녕 수사에 2~6개월씩 걸리는 것도 그런 이유다. 야근과 주말 출근 안 하면 빼는(해결하는) 사건보다 쌓이는 사건이 더 많은 게 현재 경찰조직의 현실”이라고 했다.
“전문 지식 없으면 이해하기도 힘든 고도의 범죄 많아”
그는 “세상에 폭행, 절도처럼 단순하고 영상 증거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건들만 있다면 검수완박 하더라도 인원 충원만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현실 세상은 폭행, 절도같이 간단한 사건만 있는 게 아니다. 전문지식이 필요한 고도의 지능범, 민사와 얽혀있는 사기꾼, 경제사범, 합법을 가장한 권력 유착형 범죄 등이 있고 이러한 사건들에는 형법, 민법 각종 법률이 다 얽혀들어 있어서 이게 죄가 되는지, 단순 민사인지도 애매하고, 무슨 죄를 적용해야 되는지 변호사마다도 의견이 갈리는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범죄들이 존재한다. TV에 피해자 수만 명씩 나오는 고도의 지능형 사기 사건, 대장동 사태처럼 합법을 가장한 수천억대 권력형 비리 등 온 나라를 뒤집는 범죄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업무는 정말로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도 힘든 분야라 변호사 외에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자문이 필수”라며 “변호사, 검사, 판사들도 각자 자기 전문 분야가 따로 있고, 전문 분야 사건만 맡을 정도로 법률이라는 게 복잡하고 광범위해 해당 분야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하고 전문가 자문도 참고하며 몇 년간 경험치가 쌓여야”하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
또 경찰과 달리 직접 공판에 참여하는 검찰은 어디에서 절차적 흠결이 문제 되고 첨예한 대립각이 나올지 볼 수 있는 게 많다고도 했다. 그는 “공판과 수사는 한 몸이기 때문에 공판에 참여하는 검사가 수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당연히 절차적 흠결이 생길 수 있는데 (검찰이) 직접 수사를 못 하면 대응이 느릴 수밖에 없다”며 “결국 그 절차적 흠결을 파고든 변호사들의 전성시대가 올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정말로 틀린 말이 아니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직의 특성에 대해서도 “경찰들은 거의 다 생계형 직장인들이라 독단적 행동이 불가능하고, 외부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애초에 경찰청장 이하 일선 과장급까지 임명권자가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인데 어느 누가 자기 생계까지 걸어가며 정권 수사를 할 수 있겠냐”며 “반면에 검사는 개개인이 독립관청이라 그런 압력에서 대체로 자유롭고, 검사 관둬도 변호사 하면 꿀릴 게 없고, 관두고 더 많은 부가 보장되는 상황이니 소신껏 할 수 있다”고 차이를 설명했다.
조직 수뇌부의 역량도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검사조직은 밑바닥부터 수뇌부들까지 수십년간 수사 실무만 뛰며 단계적으로 올라오던 수사 베테랑들로만 이루어진 조직이라, 모든 마인드 세팅이 ‘수사 위주’로 되어있다. 반면 경찰은 업무 범위가 굉장히 광범위하고 수사 부서는 그 많은 부서 중의 일부일 뿐이며, 수사 한번 안 해보고 행정, 경비, 기획 등 수사와 무관한 경력으로 올라간” 수뇌부도 있다고 했다.
“검경 협력하며 일하고 있었는데 정치인들이 균형 깨”
그러면서 “그동안 각 조직의 특성에 맞춰서 경찰이 수사하고, 법률전문가인 검사가 검토 및 보완해주는 시스템으로 분업하고, 협력하며 일하고 있었는데 정치인들이 이 균형을 깨려고 한다”며 “물론 나도 검사의 과도한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아무런 대안도 없이 졸속으로 나라의 가장 전문적인 수사 조직을 통째로 날려 버린다는 건 모기 잡겠다고 집 전체를 불태워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또 “국가의 사법 시스템을 바꾸는 이유가 고작 전직 대통령과 그 세력들의 허물을 덮기 위해 사용되어선 안 된다”고도 했다.
다만 “마치 수사에 자부심 있는 사우님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여지가 있어 미리 사과 드린다”며 “당연히 제 개인과 일부의 의견이 전체를 대변하는 건 아니며 저와 생각이 다른 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