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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컸던 첫 태풍, 폭염의 첨병일까[이원주의 날飛]

입력 | 2022-04-19 18:00:00



봄은 짧습니다. 만끽하고 계신지요. 조심 또 조심해야 하지만 마침 거리두기도 끝났습니다. 혹시라도 아직 꽃구경을 못 하셨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겹벚꽃이 곧 절정을 맞을 테고, 철쭉도 곧 만개할 테니까요.


봄 겹벚꽃 풍경을 즐기는 상춘객들(2019년). 동아일보DB



그런데 우리나라 봄 날씨는 좋지만 저 멀리 태평양의 봄 날씨는 좀 심상찮아 보입니다. 여러 가지 현상들이 이어질 여름 날씨를 걱정스럽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날飛’에서는 올해 봄 날씨가 어떻게, 왜 달랐는지 좀 살펴보겠습니다.



●1호 태풍이 왜 이래?

눈에 띄는 조짐은 태풍입니다. 4월 6일 북태평양 괌 남쪽 먼 바다에서 올해 첫 태풍이 생겨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심부 최대 풍속이 초속 17m를 넘으면 태풍으로 봅니다.


2022년 제1호 태풍 ‘말라카스’의 이동 경로. 자료: 기상청

한 해 중 제일 먼저 생기는 태풍이 4월에 생기는 건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태평양 적도 부근에서는 1월에도 태풍이 자주 발생합니다. 심상찮았던 건 태풍의 경로와 세력입니다. 2022년 제1호 태풍 ‘말라카스’는 마치 초여름, 혹은 초가을 발생한 태풍처럼 이동했습니다. 한반도에 근접하지는 않았지만 전형적인 포물선 형태를 그리며 이동했고, 일본 도쿄 남쪽 약 700km 부근까지 북진했습니다. 위도 30도선을 넘어서까지 치고 올라왔는데, 1호 태풍으로서는 이례적입니다. 가장 최근에는 2009년 1호 태풍이었던 ‘구지라’가 위도 30도선을 넘겼었는데 이 태풍은 5월 하순에 발생한 태풍이었습니다.


2009년 제1호 태풍 ‘구지라.’ 올해 ‘말라카스’처럼 북위 30도선 위까지 진출했지만 발생 시점은 말라카스보다 약 1개월가량 늦습니다. 자료: 기상청

위력도 1호 태풍답지 않았습니다. ‘말라카스’는 4월 14일 쯤 최전성기를 보냈는데, 이 때 최대풍속은 초속 43m, 태풍의 직경은 무려 840km나 됐습니다. 중심기압 950hpa로 한여름에나 볼 법한 강한 태풍으로 발달했습니다. 최전성기에 한반도를 관통했다면 우리나라 전체를 집어삼킬 수 있는 크기입니다.



반경 420km 태풍과 한반도를 합성한 모습. 한반도 거의 전역을 덮습니다. 자료: 구글어스






●왜 이렇게 커졌을까



1호 태풍이 이처럼 커진 이유는 뭘까요. 대단한 이유는 아니고, 아시아쪽 태평양의 물 온도가 평소보다 뜨겁기 때문입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서태평양, 그러니까 아시아쪽 태평양의 해수면온도는 평소보다 높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태풍은 바다에서 증발하는 수증기를 먹고 위력을 키웁니다. 해수면온도가 높으면 증발하는 수증기가 많아지고, 태풍도 그만큼 힘이 세지게 됩니다.


전세계 대양의 해수면 온도. 붉을수록 평년보다 온도가 높고 파랄수록 낮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 부군의 북서태평양 수온은 높은 반면 남미 대륙쪽 남동태평양 수온은 낮은 ‘라니냐’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자료: 미국 해양대기청(NOAA)




해수면온도가 높아지면 태풍이 이동하기도 좀 더 수월해집니다. 해수면 온도가 높으면 북태평양 고기압이 덩치를 키우기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태풍은 보통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이동합니다. 북태평양고기압의 세력이 커지면 태풍의 이동 경로도 길어지고, 따뜻한 해수면에서 먹이가 되는 수증기를 듬뿍 흡수할 수 있어서 힘도 세집니다. 힘이 세진 태풍은 북쪽 아직 찬 바다쪽으로 올라오더라도 오랜 기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6일 열대저압부로 태어난 말라카스는 8일 태풍으로 ‘승진’한 뒤 16일 열대저압부로 사라질 때까지 8일 간 살아남았습니다.



●문제는 여름


걱정되는 점은 태풍의 위력을 키운 해수면 온도와 북태평양고기압이 우리나라의 여름철 날씨를 좌우한다는 점입니다. 4월인 지금부터 태평양 수온이 지금처럼 계속 높게 유지된다면, 북태평양 고기압은 평소보다 빨리 강해지고 크기도 커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가까워지는 시간도 그만큼 짧을 겁니다. 폭염이 빨리 찾아오고, 매우 심하고, 오래 갈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 해외 분석기관에서는 올해 여름 ‘역대급 폭염’이 북반구 전역을 덮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합니다.


2021년과 2022년 4월 18일 기준 북태평양고기압 세력 비교. 올해의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이 지난해보다 강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료: 기상청




2016년과 2018년 맹위를 떨쳤던 역대급 폭염도 모두 북태평양고기압의 기이한 확장이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보통 우리나라는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에서 여름을 보내는데, 특히 2018년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이 너무 커져서 한반도를 완전히 덮어버렸습니다. 여기에 당시처럼 티베트 고원 상층 고기압까지 우리나라로 영향력을 넓힐 경우 또 한 번 극심한 폭염을 보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2016년과 2018년 폭염 당시 우리나라 상공 일기도. 티베트 고기압과 북태평양고기압 영향을 동시에 받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2016년과 2018년 한반도 폭염의 특징 비교와 분석, 이희동(경북대 천문대기과학과) 外, 2019년




다행인 점은 아시아 부근의 서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6월쯤 평년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는 예보가 나왔다는 점입니다. 현재 태평양 서쪽(아시아쪽)의 수온이 높고 반대로 동쪽(남아메리카 대륙쪽)의 수온이 낮은 현상은 전형적인 ‘라니냐’ 현상인데, 이 라니냐 현상이 6월이 되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기상청은 전망했습니다. 본격적인 여름인 7월 이후에 대한 우리나라 예보는 5월 하순 쯤 발표됩니다. 부디 올해 여름에는 조금이라도 덜 힘들기를, 그래서 폭염으로 인한 피해가 조금이라도 덜 나오기를 기원합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