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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원수]드래건힐

입력 | 2022-04-20 03:00:00


주한 미군들은 한국어 지명을 발음하기 쉽게 영어식으로 자주 바꾼다. 미 보병 2사단 부대가 있던 동두천(Tong Du Cheon)은 이니셜만 따서 TDC라고 한다. 용산(龍山)은 지명의 뜻을 영어로 옮겨 ‘드래건힐(Dragon Hill)’로 부른다. 남산은 산(mountain)보다 언덕(hill)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한다. 용산 미군 기지의 사우스포스트엔 드래건힐 호텔이 있다. 한국에 배속된 미군이 자대에 배치되기 직전 머무는 곳이어서 미군은 드래건힐이라는 지명에 꽤 익숙하다.

▷다음 달 10일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 집무실이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겨간다. 드래건힐 호텔에서 직선거리로 300m 정도 떨어진 곳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측은 기존 청와대(Blue House)의 약칭인 ‘BH’를 대신해 요즘 ‘DH’라는 말을 자주 쓴다고 한다. 용산 시대를 상징하는 임시 용어인 셈이다. 인수위 측은 다음 달 15일까지 공모를 거쳐 올 6월 초쯤에 대통령실의 공식 명칭을 발표할 예정이다. 영어 약칭도 발표할 수 있다.

▷용산 대통령실의 모델은 미국 백악관이다.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취임 2년 뒤인 1792년에 공사를 시작했는데, 그의 사후인 1800년에 완공됐다. 공식 명칭은 ‘대통령의 집(President‘s House)’이었다. 이름처럼 대통령 집무실 겸 숙소였다. 1812년 영국과의 전쟁 때 하얀 건물이 새까맣게 불에 탄 적이 있는데, 그해 신문에서 백악관(White House)이라는 말을 처음 썼다. 1901년 리모델링을 끝낸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백악관을 공식 명칭으로 채택했다.

▷청와대 경내에는 숙소동과 집무동이 모두 있지만 용산 대통령실엔 집무동만 있다. 미군 기지가 추가로 반환되면 집무동 인근에 관저를 신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 시점을 예상하기 어렵다. 당분간은 차로 3∼5분 거리인 한남동 합참의장 공관이 대통령 숙소가 된다. 일본은 총리가 집무를 보는 관저(官邸)와 숙소인 공저(公邸)가 각각 있다. 영국의 다우닝가 10번지, 프랑스의 엘리제궁 등 유럽은 대부분 관저와 집무실이 한곳에 있다.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이 이화장에서 지금의 청와대인 경무대로 옮겼을 때 1층은 집무실, 2층은 숙소였다. 용산 시대는 74년 만에 대통령이 일하는 곳이 곧 대통령의 집인 시대가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권위주의 시절을 거치며 청와대에는 구중궁궐 속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생겼고, 민주화 이후 대통령은 집무실 이전을 시도했다. 찬반 논란 속에 용산 이전을 고집한 윤 당선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용산 시대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것이다.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