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과정서 아쉬운 정치인지 감수성 묻지마 식 탈정치가 과연 절대선인가
이승헌 부국장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전까지 ‘선출직 0선’이라는 사실은 플러스와 마이너스, 음과 양이 모두 있다.
우선 플러스 요인. 여의도에 빚진 게 없기 때문에 기존과는 다른 정치를, 더 정확히는 과감한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주변의 우려에도 경선 과정에서 김종인과 결별하고 막판에 안철수와 별다른 협상도 없이 전격적인 단일화를 이뤄낸 게 그러하다.
하지만 당선 이후 40여 일 동안 용산 집무실 이전 결정과 인선 논란을 보면서 이제는 0선의 그림자도 드리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기존 정치적 문법과 무관하게 당선되어서인지 여의도가 관행적으로 중시해 온 안배, 고려, 여론 살피기 등을 그다지 감안하지 않는다.
물론 효율이나 성과는 중요하다. 공정, 상식 못지않게 문재인 정부에서 간과된 가치들이다. 문제는 여기에 집중하려다 보니 기존의 정치 문법에서도 물려받아야 할 것들이 동시에 휩쓸려 가고 있다는 데 있다. 그중 핵심은 최고 지도자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정치인지 감수성이다.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자신이 정치 초짜라는 사실을 드러내왔다. 오히려 자신의 브랜드로 삼았다. “내가 정치언어를 잘 몰라서 그러는데….” 바꿔 말하면 기존 정치적 화법, 상황 인식을 몰라도 첫 번째 선출직 도전에서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자기 스타일의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당선인이 간과하고 있는 정치인지 감수성의 요체는 뭘까. 내가 사실이라 믿는 것과 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이라고 필자는 본다. 윤 당선인이 능력을 보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했다 생각하더라도, 사람들은 적폐청산 수사를 위해 최측근 인사를 발탁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당선인은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부정의 팩트가 확실히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범법 사실 이전에 새 정부 조각에서 조국의 그림자를 발견한 것 자체를 불쾌하게 여긴다. 이런 괴리가 길어지면 민심과 역주행하게 되고, 사람들은 당선인이 세상과 소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국정은 기업도 검찰도 법정도 아니다. 효율, 성과, 법리적 팩트만으로는 온전히 꾸려가기 어렵다. 정치인지 감수성을 바탕으로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고차 방정식이다. 수십 년간 쌓인 정치 혐오가 0선의 윤 당선인을 불러냈으나, 그에게 여전히 고도의 정치력을 요구하는 게 한국 정치의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윤 당선인이 기자들과의 만남을 피하지 않고 거의 혼밥을 하지 않을 정도로 소통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대목이다. 하지만 이런 것도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파악하기 위한 수단이어야지, 만남 자체가 목적이거나 보여주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만나고 밥 먹는다고 통치를 위한 정치인지 감수성이 저절로 키워지는 건 아니다. 당선인이 세상과의 진짜 소통을 통해 0선의 그림자를 서서히 거둬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