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병원 진료 놓고 20년 논쟁 제주 녹지병원 치열한 다툼 “의료 양극화 초래할 것”… “의료기술 선순환 효과볼 것”
‘국내 1호 영리병원’으로 승인됐지만 제주도가 개설 허가를 취소한 제주 서귀포시 녹지국제병원. 서귀포=뉴스1
조건희 정책사회부 기자
《영리병원을 둘러싼 논쟁이 20년째 현재진행형이다. 법으로 허용된 건 2002년인데 단 한 곳도 개설되지 않고 찬반만 분분하다. 한쪽에선 의료 공공성을 무너뜨릴 도미노의 첫 줄이라고 걱정하고, 반대쪽은 경쟁과 효율화로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일 마중물로 기대한다.
입법 행정 사법도 혼란스럽다. 국회는 법으로 허용했는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불허했다. 법원은 그런 지자체의 결정이 위법이라고 한다. 이런 와중에 최근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법원의 한 판결이 또다시 논쟁에 불을 댕겼다. 경과와 쟁점을 들여다봤다.》
○ 정권 바뀌며 ‘취소’, 법원은 “불허 근거 없어”
2015년 6월 중국 부동산기업 뤼디(綠地·녹지)그룹이 자회사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녹지제주)를 통해 제주 서귀포시에 녹지국제병원을 설립하겠다는 사업계획서를 제주도에 냈다. 성형외과 등 4개 진료과목을 둔 47병상짜리 소형 병원이었다. 일사천리로 보건복지부가 건립을 승인해 2016년 4월 병원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정부가 영리병원 허용 방침을 밝힌 지 14년 만이었다.
2017년 7월 녹지국제병원 건물이 완성됐다. 그런데 그사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분위기는 180도 달라져 있었다. 대통령비서실 지시로 만들어진 복지부 적폐청산위원회는 영리병원 중단을 권고했다. 2018년 12월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조건으로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허가했다. 녹지제주는 이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송을 냈고, 제주도는 개설 기한(3개월) 내에 문을 열지 않았다며 허가를 취소했다.
병원 개설 허가 취소에 대한 소송은 녹지제주가 최종 승소했다. 지난해 8월 광주고법은 녹지제주가 병원 문을 열지 못한 책임이 제주도에 있었다며 취소 처분을 거두라고 판결했고, 올 1월 대법원이 이를 확정했다.
○ “건보 붕괴와 필수의료 공백 초래 우려”
영리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라는 법원 판결이 주목받는 이유는 영리병원과 일반 병원이 같은 링 위에서 경쟁하게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경제자유구역법에 따라 영리병원 개설이 가능한 인천 송도국제도시 등 전국 9개 경제자유구역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선 영리병원이 우후죽순 늘어나면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악화할 거라고 우려한다. 일반인이 의사를 ‘바지 원장’으로 내세워 운영하는 사무장 병원처럼 투자금 회수에 혈안이 돼 진료비를 부풀리거나 질 낮은 의료를 할 거란 얘기다. 전성훈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는 “자본이 의료를 지배하면 안 된다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영리병원 진료를 건보 적용에서 제외하면 의료 양극화가 더 심해질 거란 지적도 있다. 실력 있는 의료진은 비급여 진료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영리병원으로 몰리고, 외과 수술이나 감염병 치료처럼 ‘돈 안 되는’ 진료는 소외될 거란 얘기다. 헌법재판소는 2002년 10월 모든 병원이 반드시 건보 환자를 진료해야 한다는 국민건강보험법이 합헌이라고 결정하면서 “(병원의 선택에 맡기면) 건보 진료는 2류 진료로 전락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우려들은 하나씩 보면 타당하나 각각의 연결고리는 약해 보인다. 영리병원이 곧 건보 체계 붕괴로 이어질 거란 추론이 그렇다. 우리나라에선 암과 희귀질환 등 필수의료에 이미 상당한 수준까지 건보 혜택을 주고 있다. 환자로선 효과가 비슷한 치료라면 굳이 건보 적용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영리병원이 사무장 병원처럼 질 낮은 의료를 할 거란 우려도 마찬가지다. 그런 병원은 환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도태되는 게 시장의 논리다.
○ “영리병원서 육성한 신의술 선순환”
그렇다고 영리병원의 미래를 무작정 장밋빛으로 볼 수만은 없다. 의료 산업이 수십 배로 성장할 거라는 연구들을 자세히 뜯어보면 진료비가 폭등해도 환자 수는 그대로일 거란 비현실적인 전제로 계산한 게 많다.
정우진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어느 나라나 공보험이 보장하지 못하는 의료서비스를 민간에서 보완하고 있다”라며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오히려 진료의 질이 낮은 병원은 건보에서 제외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했다.
조건희 정책사회부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