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 도로는 보행자를 위한 공간이었다. 자동차가 보편화되며 보행자는 길 가장자리로 밀려났고, 자동차는 편리하지만 보행은 불편한 방향으로 생활환경이 변했다.
주요 선진국들은 교통정책을 보행자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한국은 1991년 교통사고 연간 사망자가 최대치(1만3429명)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교통안전정책을 펼쳐 사망자가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보행 중 사망자는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약 4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인구 10만 명당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2019년 기준)도 2.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29위다. 이는 OECD 평균(1.1명)의 2.3배 수준이다.
정부는 보행자 안전을 위해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횡단보도 앞에서 차량의 일시정지 의무를 강화하고, 보도와 차도가 분리되지 않은 도로에서 보행자의 우선 통행권을 보장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7월부터는 이면도로에서 보행자 우선 통행 보장, 차량 속도 제한, 보행 친화적 환경 정비 등이 적용되는 ‘보행자 우선도로’가 도입된다.
정부는 보행자가 도로에서 우선권을 가지도록 실질적 권리를 확대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안전하고 편리하며 차별받지 않는 보행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 처음 수립되는 ‘제1차 국가 보행 안전 및 편의 증진 기본계획’은 이런 목표와 전략을 담고 있다. 보행자를 배려하는 사회적 인식의 전환 역시 중요하다. 운전자를 비롯한 사회구성원 모두가 보행자를 보호하고 배려할 때 누구나 안전하고 편리하게 보행할 권리가 보장될 것이다.
보행권 보장은 ‘이동’과 ‘효율’ 중심의 교통문화를 ‘안전’과 ‘포용’의 문화로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탄소중립 실현과 지속가능개발, 모빌리티 혁신 등을 위한 미래 의제 중 하나다. 2020년 전 세계 국가들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2030년 유엔 지속가능개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친환경적인 이동수단인 보행을 활성화하고, 교통약자들을 위한 보행 환경을 조성하며,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50%로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보행자 권리 강화는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다. 세계 각국은 보행권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의 보행 여건은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걸을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하면서 사람 중심의 교통문화를 선도하기를 기대한다.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