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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살인’ 현장 가보니…지척 구명튜브 놓고 14㎞ 밖 119 불러

입력 | 2022-04-20 00:37:00


19일 경기 가평군 북면 도대리 용소계곡 폭포의 모습 © 뉴스1

부작위(不作爲) 살인 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까?

‘계곡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31)와 조현수(30)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리는 19일 경기 가평군 용소계곡 현장을 찾았다.

이곳은 이은해 등의 살인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반드시 파악해야 할 범행 장소의 특성을 보여주는 곳이다. “밀지 않았다”며 살인 혐의를 부정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은해 등의 주장에 맞서 검찰이 “살릴 수 있었으나 방치해 살해했다”는 논리가 성립하려면 범행 현장에서 근거를 찾아야 한다.

범행 장소인 가평 용소폭포는 국도75번 바로 옆에 위치했으며 지난해 5월 민선7기 이재명 경기도지사 시절 ‘계곡 하천정비’ 사업으로 진입로 데크와 벤치 등이 설치돼 깔끔하게 정비된 상태였다.

데크 위로 ‘물놀이 사망사고 발생지역’이라는 입간판이 세워졌으며, 3년 전 A씨가 다이빙해 숨진 바위 일대에도 ‘[안전부주의] 사망사고 발생지역’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비수기라서 상인도, 관광객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물놀이 안전지킴이집’, ‘농산물판매장’ 등의 공간이 설치돼 있었으나 상주 인력은 없었다.

19일 경기 가평군 북면 도대리 용소계곡 폭포의 모습 © 뉴스1


계곡 주변에 튜브 등 안전용품이 든 인명구조함이 2개가량 설치돼 있었다.

가평군 관계자에 따르면, 2017년 이곳이 ‘물놀이 위험지역’으로 지정되기 전부터 인명구조함이 설치돼 있었다고 한다.

4월 갈수기라 그런지 피해자 A씨가 뛰어들었던 용소계곡 폭포 아래 하천의 수심은 깊어 보이지 않았다. 청명한 물은 바닥까지 훤히 보였다.

뭍에서부터 폭포까지는 약 15m 정도로, 사람이 빠졌을 때 몇 초 만에 접근할 정도로 폭이 넓지 않았다.

성인 남성이 뛰어들 경우 그 위치를 충분히 식별하고 동선을 가늠할 만한 공간이었다.

수영에 능숙한 사람이 튜브나 안전조끼 또는 로프를 이용한다면 1분 내로 요구조자한테 접근할 수 있는 장소였다.

5년 전 이 일대가 물놀이 위험지역으로 지정된 후 해마다 성수기 때면 이 일대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물놀이 안전요원들이 4명씩 배치돼 근무했다.

다만 2019년 6월30일은 하천에 물이 많아 수심이 이보다 깊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사고가 일어난 시간도 오후 8시를 넘겨 사위가 어둑해졌을 무렵이다.

가평군 관계자는 “기간제 안전요원들이 퇴근한 뒤 사건이 벌어졌다”면서 “그들(이은해와 조현수 등)은 안전요원들이 퇴근한 뒤 물놀이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19일 경기 가평군 북면 도대리 용소계곡 폭포 앞에 설치된 인명구조함 © 뉴스1


이처럼 이들은 범행을 위해 안전요원들이 퇴근한 뒤를 범행 시간으로 계획했을까?

계곡 살인 사건 관련 이와 관련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은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과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라고 뉴스1 등에 밝힌 바 있다.

법률용어 부작위란 ‘어떤 행위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이를 하지 않는 것’을 지칭한다.

언론 등에 공개된 사고 직전 영상에 비춰볼 때 2019년 6월30일 오후 조현수가 먼저 다이빙해서 뛰어내리고 튜브에 타고 있었으며 주변에 일행들이 있었다.

조현수와 이은해가 지켜보는 가운데 A씨가 이은해의 재촉에 못 이겨 뛰어내렸고 수영을 못하던 A씨는 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특수부대 출신 예비역 소령 정모씨(42)는 “현역 시절 수중구조 훈련을 자주 했다. 사람이 물에 뛰어들면 폐에 공기가 있어 물 위로 떠올라 ‘어푸어푸’하면서 발버둥을 친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이은해와 조현수, 공범 B씨(30)는 A씨가 수영을 못하고 물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럼에도 이은해는 다이빙하길 망설이는 A씨에게 “오빠, 안 뛰면 내가 뛴다?”라고 심리적 압박을 가했고, A씨가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서도 주변 구조용 튜브와 조끼를 적절히 사용하지 않았다.

지척에 인명구조함이 2개나 있었음에도 활용하지 않은 것이다.


19일 경기 가평군 북면 도대리 용소계곡 폭포 앞에 설치된 인명구조함 © 뉴스1


이은해와 조현수 등이 119에 신고한 시점, 119구급대가 도착한 뒤 A씨가 빠진 지점과 현장상황에 대해 구조대원에게 정확히 안내했는지 여부도 검찰과 경찰이 면밀히 분석해야 할 과제다.

용소계곡 일대로 접근할 수 있는 도로는 폭이 좁고 구불구불해 14㎞ 밖의 가평 북면119지역에서 출동하면 10분 이상 소요된다. 이은해와 조현수는 이러한 점도 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사당국 등에 따르면 당시 119신고 후 잠수사에 의해 22분 만에 A씨를 구조해낸 것으로 전해졌다. 수영을 못하는 A씨가 홀로 버티기는 어려운 시간이다.

이들은 A씨가 수영을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다이빙을 강요, A씨가 구조를 필요로 하는 상황인데도 구조하지 않아 숨지게 한 혐의다.

이에 앞서 2019년 2월 강원 양양군 펜션에서 A씨에게 복어 정소와 피 등을 섞은 음식을 먹여 숨지게 하려다가 치사량에 미달해 미수에 그친 혐의, 그해 5월 경기 용인시 낚시터에서 A씨를 물에 빠뜨려 숨지게 하려다가 A씨의 지인이 발견해 A씨가 물 밖으로 나오면서 미수에 그친 혐의도 받는다.

이들은 A씨가 숨지고 4개월 뒤인 10월19일 ‘단순변사’로 내사종결 처리되자, 다음달인 11월 보험회사에 A씨에 대한 생명보험금 8억여원을 청구했다가 거절 당한 혐의(보험사기미수)도 받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14일 검찰 조사에 불응해 도주했으며 도주 124일 만인 지난 16일 고양시의 오피스텔에서 검거됐다.

이날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기 전 이씨는 “피해자와 유족에게 미안하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채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법정으로 들어갔다. “계획적 살인 인정하나”는 질문을 받은 조씨 역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법정으로 들어갔다.

(가평=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