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키이우 함락 실패후 목표 변경… 친러 지역 장악 나서며 ‘2단계 작전’ 푸틴 사병조직 ‘바그너그룹’도 투입… 대규모 지상전으로 크레민나 장악 ‘관문’ 이줌도 포위… 1만여명 갇혀… “민간인 학살 ‘제2의 부차’ 될 수도” 바이든, 러 테러지원국 지정 검토
격추된 러軍 헬리콥터 18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안토노우 공항에서 우크라이나 군인이 격추된 러시아군 헬리콥터 잔해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달 말부터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주변으로 주요 병력을 재배치한 러시아군은 이날 돈바스에 대대적인 포격을 가하며 지상전을 시작했다. 키이우=AP 뉴시스
러시아가 18일(현지 시간) 친러시아 세력이 많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 대대적인 포격을 감행하며 대규모 지상전을 시작했다. 지난달 2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일대에 대한 ‘1단계 군사작전’을 끝내고 돈바스를 자국 영토로 강제 병합하겠다고 선언한 지 24일 만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2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19일 “작전이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서방은 러시아가 자국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인 다음 달 9일까지 돈바스를 손아귀에 넣어 전쟁 승리를 주장하려 한다고 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아무리 많은 러시아군이 몰아닥쳐도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지만 러시아군이 키이우 인근 부차 등에서 자행한 민간인 집단학살을 다시 행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군은 이미 1일부터 돈바스의 관문 격인 인구 4만6000명의 이줌을 포위했고 최대 1만5000명이 대피하지 못한 상태다. 영국 가디언은 이줌이 ‘제2의 부차’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러, 크레민나 장악… 용병 투입
러시아군은 이날 돈바스에 형성된 480km의 전선을 따라 대규모 지상 공격을 감행했다. 평야가 많고 인구밀도가 낮은 돈바스는 키이우 등 대도시와 달리 건물 등 몸을 숨길 지형지물이 적다. 수십 km 거리에서 양국이 152∼240mm 곡사포를 쏘는 대대적인 화력전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병참 등의 문제로 키이우 장악에 실패했던 것과 달리 돈바스는 러시아 국경과 가깝고 도움을 줄 친러 세력도 많아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 측면을 포격해야 승산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푸틴 대통령의 사병(私兵)으로 유명한 용병 조직 ‘바그너그룹’도 투입됐다. 해골 모양을 트레이드마크로 쓰는 이들은 중동, 중앙아프리카 등에서 러시아군을 대리하고 있으며 고문, 민간인 학살 등으로 규탄받고 있다. 푸틴의 최측근인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그룹 대표 또한 돈바스에 도착했다고 더타임스 등이 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대피하지 못한 이줌 주민들이 한 달 이상 음식도 없이 지하실에 숨어 있다며 “이줌과 부차의 상황이 놀랍도록 흡사하다”고 전했다. 발레리 마르첸코 이줌 시장은 “러시아군의 포위 후 이미 1000명의 민간인이 숨졌다”고 밝혔다.
○ 우크라 서부서도 첫 민간인 희생자
러시아군은 18일 폴란드 국경에 접한 서부 르비우 등 주요 도시 16곳에도 미사일을 쐈다. 그간 안전지대로 꼽히던 르비우에서 처음으로 민간인 7명이 숨졌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러시아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면 러시아에 대한 대대적인 추가 제재가 이뤄지며, 러시아와 거래하는 중국 등도 제재할 수 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