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수 신체-동작 담는 ‘발레사진가’ 근육 질감-신체라인 드러날 때 정확히 포착하는 ‘타이밍의 예술’ 무용수 출신 작가들 경험 토대로 공중 머무는 모습 등 촬영 최적 “무용수는 아름다운 선 만들고 감정 표현하는 최고의 피사체”
스페인에서 공연한 ‘해적’ 갈라 무대(2020년)에서 나란히 무대에 선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첫 동양인 수석무용수 김기민(오른쪽)과 영국 로열 발레단 수석무용수 마리아넬라 누녜스. 김윤식 사진작가 제공
‘한 컷의 추상예술.’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발레리노 출신의 박귀섭 사진작가(38)는 무용수를 찍은 사진을 이렇게 정의했다. 무용수의 몸짓은 구체적인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추상의 영역이기에 찰나를 담아낸 사진 역시 추상예술이라는 얘기다.
오로지 무용수를 사진에 담는 이들이 있다. 화가들이 인체의 아름다움을 그려내듯, 무용수의 신체와 동작을 사진예술의 소재로 삼는 ‘발레 사진작가’들이다. 국내 양대 발레단에서 활동 중인 이들을 인터뷰했다.
무용수를 촬영하는 작업은 고난도의 기술을 요한다. 무용수마다 각기 다른 근육의 질감이나 신체 라인을 만들어내는 순간이 있는데 이를 정확히 포착해야 하기 때문. ‘타이밍의 예술’을 하는 사진작가들 사이에서도 무용수 촬영이 유독 도전적인 작업으로 통하는 이유다.
김경진 유니버설발레단 전속 사진작가(36)는 “인간의 몸만큼 많은 텍스트를 담고 있는 건 없는데 발레는 신체의 선과 움직임을 예술로 승화시킨 장르”라며 “순간의 역동성, 미세한 근육 변화를 사진에 담는 게 짜릿하다”고 말했다. 손자일 국립발레단 전속 사진작가(36)는 “발레리나나 발레리노를 잘 찍는 게 평생 로망인 작가도 많다”고 했다.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공연(2019년)에서 오데트, 오닐 역을 연기한 박슬기 수석무용수. 손자일 사진작가 제공
어떤 무용수는 자신의 몸짓을 찍은 사진을 일종의 ‘자습장’으로 활용한다. 발레는 초 단위로 정확한 동작을 연기해야 전체 작품의 질이 올라가는 만큼 자신의 사진을 보고 동작을 점검하는 것. 김경진 작가는 “사진을 훑어보면서 ‘이런 게 문제였구나’ ‘몸을 이렇게 썼구나’라며 복습하는 무용수가 많다”고 했다. 박귀섭 작가는 “정확한 타이밍을 맞춰 촬영하면 굳이 누가 지적하지 않아도 무용수 본인이 실수한 걸 스스로 알아차린다”고 말했다.
키 181cm의 장신 발레리나 이상은의 프로필 사진. 그는 현재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다. 김윤식 사진작가 제공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