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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에 위치한 중견 건설사 A사의 공사 현장. 900채 규모 아파트를 짓는 이곳 현장소장 이모 씨(55)는 출근할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골조 공사를 하는 하도급 업체가 재정 악화로 계약 포기를 선언하며 공사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새로운 하도급업체를 다시 계약해야 하는데 마땅한 업체도 찾기 힘든 상황이다. 이 씨는 “자재값 급등으로 선뜻 공사에 나서는 하도급 업체가 없다”며 “공사 지연으로 준공 날짜를 못 맞출 것 같다”고 했다.
철근과 레미콘, 시멘트, 골재 등 건설 자재값이 치솟으며 전국 건설현장에서 줄줄이 공사가 중단되고 착공도 지연되고 있다. 올해 주택 착공 물량이 전년 대비 급감하는 등 주택 공급 차질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재값 인상이 건축비에 반영될 경우 아파트 분양가까지 함께 뛸 것으로 보인다.
2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2월 전국에서 착공된 주택은 4만4352채로 전년 동기(7만288채) 대비 36.9% 감소했다. 수도권은 2만7781채로 전년 동기 대비 35.8% 줄었고, 지방은 1만6571채로 38.7% 감소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공사가 시작되면 적자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어 착공을 미루는 업체들이 꽤 있다”며 “3월 착공물량도 전년 대비 줄 것”이라고 했다.
전국 20개 건설 현장에서 골조공사를 하고 있는 A 건설사 임원 김모 씨(59)는 “자재값이 올라 현장 운영도 힘든데 이달 직원 100명분 월급까지 밀렸다”며 “공사를 할수록 적자가 쌓여 올해 누적 적자만 25억 원이다. 파업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자재값 상승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한국물가협회에 따르면 건설 현장에서 가장 많이 쓰는 ‘SD400 10mm’ 철근 톤(t)당 시장 거래가는 이달 110만 원이다. 지난해 4월(76만 원) 대비 69.7% 올랐다. 레미콘의 주 원료가 되는 시멘트값도 급등세다. 국내 시멘트업계 1위인 쌍용 C&E는 15일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와 1종 시멘트 가격을 t당 7만8800원에서 9만8000원으로 15.2% 올리기로 합의했다.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자재값 급등세가 이어지며 하도급업체는 공사비를 증액해 달라고 아우성치는데 발주처는 비용을 내주지 않아 난감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자재값 상승이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분양가는 토지비, 건축비, 가산비 등으로 구성된다. 건축비는 국토교통부가 6개월마다 발표하는 기본형 건축비가 기준이 된다. 이미 국토부는 3월 기본형 건축비 상한액을 1㎡당 178만2000원에서 182만9000원으로 올린 상태다.
윤지해 부동산R114수석연구원은 “자재값이 오르면 기본형 건축비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60% 이상 지은 뒤 분양하는 후분양 단지들은 상승한 기본형 건축비가 공사비에 반영돼 분양가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정서영 기자 ce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