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침공은 우리에게도 전쟁의 공포를 안겨주고 있다. 재난의 공포 역시 전쟁 못지않다.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고,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상상하지 못한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재난은 전쟁과 유사하다.
2018년 10월 경기 고양시 대한송유관공사 고양저유소에서 탱크가 폭발하면서 초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가 발생한 위험물저장탱크에는 주유소 100개의 저장용량과 맞먹는 휘발유 440만 L를 보관 중이었고 인근 탱크의 폭발까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신고를 받은 경기북부 소방재난본부는 최고 단계인 ‘광역대응 3호’를 발령하고 서울과 인천의 소방 지원을 받아 12시간의 사투 끝에 진화했다. 화재는 탱크 내 잔류하던 휘발유를 다른 탱크로 옮기는 장시간의 작업을 병행했기에 진화가 가능했다.
이 사고를 계기로 대형 유류탱크의 ‘전면(全面·Full Surface) 화재’가 발생하면 국내 소방기관이 보유한 소방차량과 특수장비로는 사실상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화재 예방을 위한 인적·시설적 개선과는 별개로 예상치 못한 폭발, 화재 등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 대응법 연구가 소방청을 중심으로 본격화됐다.
울산소방본부는 해외 소방기관 및 관련 업계와의 정보 교류를 통해 “국내 현실에 접목 가능하며 신속한 도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일본과 유럽 답사로 정밀 조사도 병행했다.
사전준비 작업을 마친 울산소방본부는 소방청과 함께 대용량 포방사 시스템의 국내 배치 당위성을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서에 설명하고 국회의 도움을 받아 2019년 2월 국비 176억 원을 확보했다. 네덜란드에서 맞춤형으로 제작된 장비는 지난해 12월 울산항에 도착했다. 이 장비는 분당 합계 방사량이 7만5000L에 달해 화재 진압 시 폭포수를 쏟아붓는 것처럼 다량의 소화수와 소화약제를 방사할 수 있다.
이후 소방청 울산화학구조센터와 울산소방본부 특수화학구조대는 공동운영 시스템을 기반으로 배치·운용 계획을 수립하고 실전훈련을 거듭했다.
올 1월 23일 울산 남구의 석유화학 완제품 보관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엄청난 화염과 연기로 주민 대피명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소방 대응 2단계 발령으로 100여 대의 소방차가 집결해 진화작업을 벌였지만 화세는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았다. 이에 울산소방본부는 대용량 포방사 시스템을 출동시켜 불길을 일거에 제압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2007년 대구에서 울산보다 작은 규모의 석유화학 완제품 보관창고 화재 진압에 64시간이 걸린 반면에 대용량 포방사 시스템을 사용한 울산 화재는 22시간 만에 진압됐다.
고대 로마의 군사전략가 베게티우스는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소방관들도 “안전을 원한다면 재난을 대비하자!”고 외치고 있다.
조강식 울산남부소방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