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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칼럼]과학기술과 경제성장, 그리고 민주주의

입력 | 2022-04-21 03:00:00

오늘 ‘과학의 날’, 과학은 경제 살리는 기술
독재 정치·폐쇄 사회에선 과학 융성 어렵다
비민주적 中도 해외 과학자 유치엔 파격적
새 정부, 과학기술 치밀하게 미래 설계해야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오늘은 1967년의 과학기술처 설립을 기념하는 ‘과학의 날’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과학기술 발전 없이 경제성장을 이룰 수는 없다”고 이야기했다. 지극히 가난했던 시절이었기에 과학기술의 가치를 주로 물질에 두었던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과학은 자연현상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는 학문이며, 경제를 살리는 것은 기술이다. 현대에 이르러 기술 발전이 과학적 지식에 의해 크게 추동(推動)되고 있기에 우리는 이를 과학기술로 뭉뚱그린 듯싶다.

한편 최근에는 과학기술 발전을 자연 생태계 파괴로 연계하는 환경 근본주의도 자리 잡았다. 환경은 물론 매우 중요하며 보전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산업문명이 초래한 기후변화나 미세먼지 등을 해결할 수 있는 길도 결국은 과학기술에 있다. 지난 5년간 우리 사회에서도 환경을 이슈화하여 이를 정치적 자본으로 만들기 위한 탈원전이 추진되었는데, 정책의 입안과 집행은 비합리적이었으며 독선적이었다. 과학적이지 못했고 전혀 민주적이지도 않았다.

사실 민주적이지 않은 사회에서는 과학기술도 융성하기 어렵다. 과학이 진보하기 위해서는 모든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 있고 이에 대한 토론이 가능해야 하는데, 이런 개방성이야말로 민주사회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물론 외교정책이라면 외교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것이 타당하듯 모든 영역에서 전문가의 능력과 역할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반면 독재정치는 정보와 지식을 통제하며 권력자에 대한 비판을 불허한다. 다른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 폐쇄적 사회 분위기에서 과학은 침체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민주주의와 거리가 있는 공산당 독재국가 중국이 이룩한 지난 30년간의 발전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가 중국과 수교하던 1992년에 12억 인구의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대한민국과 비슷했다. 그러나 이제 중국은 우리 GDP의 10배에 이르면서 미국에 필적하는 주요 2개국(G2)의 경제대국 그리고 과학기술 강국이 되었다.

중국이 개방의 길에 들어선 것은 1979년이었다. 미중 수교의 주역이었던 헨리 키신저 박사를 포함해 당시에는 전 세계 어느 누구도 오늘처럼 번성하는 중국을 예상하지는 못했던 듯싶다. 수교 후 6년이 지난 1985년에 서울을 방문한 키신저는 그 무렵 전경련 회장으로 일하던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를 만나 중국의 미래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기록을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이 앞으로 3년만 더 현대화 정책을 계속하면 그 나라는 공산주의 체제와 시장경제의 갈등으로 사회 불안이 야기되어 좌초할 것이다. 한국도 이런 혼란에 대비해야 한다.”(키신저) “미국 사람들은 중국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중국인들은 미국이 태동하기 수천 년 전부터 특히 장사에는 세계 최고의 경험과 수완을 갖고 있다. 다소 혼란은 있겠지만 앞으로 몇십 년 안에 중국은 미국에 버금가는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다.”(아산) 결국 아산이 정확히 미래를 예측한 셈이다. 놀라운 예지력이다.

실제로 중국의 경제발전은 그들의 전통적인 상인정신에 의해 가속되고 있다. 그러면 개방적 사회 분위기가 필수적인 과학기술 발전은 어느 정도일까? 이달 초에 발표된 세계적 영향력 톱10 재료과학자에는 1위, 2위를 비롯해 6명이 중국인이었다. 그리고 톱100에는 모두 29명의 중국 학자가 포함되었는데 그중 16명은 자국에서, 나머지 13명은 미국 등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한국인으로는 서울대의 현택환 교수 한 명이 65위에 올랐다. 컴퓨터, 화학 등 다른 과학 분야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이처럼 중국 과학자들은 미국 및 서구에서도 활발히 일하며 경쟁하고 있다. 중국 내부의 비민주적 체제는 걸림돌이지만, 뛰어난 해외 과학자라면 필요에 따라 어느 때나 파격적인 조건으로 유치해 가는 중국이다. 중국 정부의 14차 5개년 계획(2021∼2025년)에서 우선순위를 높게 잡은 “전략적 과학기술 역량 강화” 정책의 일환으로 믿어진다. G1으로 올라서려는 중국과 이를 기어코 억제하려는 미국 사이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 과학기술만이 아니다. 외교, 안보, 교육, 통상 등 모든 측면에서 새 정부의 치밀한 미래 설계를 기대한다. 열강의 갈등이 빚어낸 불꽃이 한반도에서 발화한 역사적 경험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