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그런데 최첨단 스마트폰도 쉽게 해내지 못하는 이 방향 인식을 첨단과는 거리가 먼 식물들은 아주 쉽게 한다. 냉장고 안을 꼼꼼히 살펴보는 사람이라면 여기에 넣어둔 양파가 가끔씩 싹을 틔운다는 것을 알 것이다.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게 있다.
우리는 냉장고 문을 열면 환하게 불이 켜져 있기에 항상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문이 닫히면 냉장고 안은 완전히 캄캄해진다. 햇빛이 들지 않아 방향도 알 수 없는 암흑 세상이다. 그런데도 양파의 싹은 위로, 뿌리는 아래로 제대로 내린다. 위쪽에선 무조건 싹이, 아래로는 뿌리가 나오도록 기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걸까?
비결이 있다. 뿌리 끝 세포에 있는 녹말로 된 작은 알갱이인 녹말립(綠末粒)으로 방향을 인식한다. 돌 알갱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평형석(平衡石)이라고 부르는 이 알갱이들은 세포액보다 무거워 늘 밑으로 가라앉지만 완전히 푹 가라앉지는 않는다. 이걸 주변에 있는 감각모들이 감지해 아래 위를 인식하는 것이다. 아니 이걸로 어떻게 위와 아래를 구분한단 말인가?
어렵지 않다. 지구에는 항상 중력이 작동하고 있어 무게가 있으면 내려앉는데 이쪽이 ‘아래’이기 때문이다. 반대는 ‘위’고 말이다. 그래서 뿌리 끝을 잘라내면 뿌리는 방황한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이리저리 헤맨다. 방향타를 잃은 배처럼 말이다. 아마 수 억 년을 살아오다 보니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이라는 걸 알았을 것이고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싹과 뿌리를 제대로 틔우고 내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리가 방향을 인지하는 것도 같은 원리다. 속귀 속의 작은 돌들인 이석(耳石)과 주변의 감각모들이 함께 방향을 파악한다.
방향이 없으면 방황할 수밖에 없다. 삶에는 방향이 있어야 한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뇌도 없는 식물들까지 방향 파악 능력을 갖춘 건 제대로 된 방향에서만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하는 정부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이런 방향성이 아닐까 싶다. 우리 모두 더 나은 미래로 갈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방향을 제시하는 게 우선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