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64년 전통 ‘차이콥스키 콩쿠르’ 선율, 총성에 묻히다

입력 | 2022-04-21 03:00:00

‘우크라 침공’ 러 주최 차이콥스키 콩쿠르, 국제 음악계서 퇴출
국제콩쿠르연맹, 회원투표로 제명
정치적 이유로 회원 퇴출은 처음… 1958년 소련 문화부 주도로 창립
“러 정권, 자금지원-홍보도구 이용”… 콩쿠르측 “음악가 피해 부당” 항변



페터 파울 카인라트 국제음악콩쿠르연맹(WFIMC) 의장이 19일 소속 콩쿠르들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를 회원에서 제명한 과정을 밝혔다. WFIMC 제공


세계 주요 콩쿠르인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국제음악콩쿠르연맹(WFIMC)에서 퇴출됐다. 세계 국제음악콩쿠르의 연합체인 WFIMC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13일 특별 총회를 열어 회원 콩쿠르들이 투표하기로 했고, 압도적 다수 의견으로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를 즉시 회원에서 제명하기로 결정했다”고 19일 발표했다.

1957년 결성된 WFIMC가 정치적인 이유로 회원 콩쿠르를 퇴출시킨 건 처음이다. 이에 따라 WFIMC 회원 콩쿠르는 117개에서 116개로 줄었다. 투표에는 회원 콩쿠르 중 90곳이 참여했고 찬성 80표, 반대 2표, 기권 8표였다.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 측은 “세계 음악공동체가 정치적 이유로 분열됨으로써 뛰어난 음악가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WFIMC 페터 파울 카인라트 의장과 플로리안 림 사무총장은 발표문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러시아의 잔혹한 전쟁과 반인도주의적 행위에 직면해, 러시아 정권이 자금을 지원하고 홍보의 도구로 이용하는 콩쿠르를 지원하거나 회원으로 둘 수 없다”고 밝혔다.

WFIMC의 김진영 매니저는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가 열리지 못하게 강제하거나 참가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발표문은 어떤 국적의 예술가든 국적 때문에 차별받거나 배제되는 일에 반대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국에서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와 통영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제주국제관악콩쿠르까지 3개 콩쿠르가 WFIMC 회원 자격을 갖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64년 역사를 가진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는 영향력과 권위에 타격을 입게 됐다. 내년 6월 예정된 이 콩쿠르 참가를 준비해온 연주자들의 피해도 예상된다.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가 배출한 유명 음악가들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는 1958년 소련 문화부의 주도로 창립됐고 러시아 연방정부와 문화부의 후원을 받고 있다. 첫 회인 1958년 피아노 부문에서 미국인 밴 클라이번이 우승해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피아노 부문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미하일 플레트뇨프, 다닐 트리포노프, 바이올린 부문 기돈 크레머, 빅토리아 뮬로바 등 세계적 거장을 우승자로 대거 배출해 왔다. 정명훈이 1974년 미국 국적으로 이 대회 공동 2위에 오르자 당시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가 열렸다.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가 배출한 유명 음악가들

한국인 첫 우승자는 1990년 남성 성악 부문의 바리톤 최현수(미국 국적으로 출연)이며 2011년 소프라노 서선영, 베이스 박종민이 각각 남녀 성악 부문에서 동반 우승했다. 2위 입상자로 2011년 피아노 부문 손열음, 2019년 남성 성악 부문 바리톤 김기훈이 있다. 한국 국적 예술가로는 1994년 백혜선이 최초로 피아노 부문에서 입상(3위)했다. 2002년 남성 성악 3위 김동섭, 2011년 피아노 3위 조성진, 바이올린 3위 이지혜, 2015년 남성 성악 3위 유한승, 2019년 바이올린 3위 김동현 등 꾸준히 입상자를 배출했다.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가 배출한 유명 음악가들

이번 WFIMC의 결정에 따라 이 콩쿠르 1, 2위 입상자의 예술체육요원 대체복무 혜택도 다시 논의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일 “관련 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와 바르샤바 쇼팽 국제콩쿠르,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 서울국제음악콩쿠르 등 28개 국제음악콩쿠르 1, 2위 입상자는 병역법상 예술체육요원으로 대체복무할 수 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