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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식 집약농법이 기후변화로 이어져 곤충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곤충 개체 수와 다양성 급감이 식량 안보를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제기했다. 국내에서도 올 초 100억 마리 꿀벌이 사라져 관심을 모았는데, 기후변화가 원인으로 꼽혔다.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곤충이 사라지는 ‘곤충겟돈’(곤충+아마겟돈)의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 네이처에 실린 ‘곤충 종말론’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연구진은 전 세계 6000개소의 토지이용 현황과 해당 지역에 서식하는 곤충 1만8000종의 개체 수가 최근 20년간 어떻게 변화했는지 분석했다고 20일(현지 시간) 미국 CNN방송이 보도했다.
조사 지역 인근에 자연 서식지가 있으면 기후변화와 농업 활동이 곤충 생태계에 미치는 충격이 일부 상쇄됐지만, 대규모 개간과 화학비료, 살충제 등 현대 집약농법이 이뤄진 지역에선 이 같은 현상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서식지 파괴가 적은 구식 농법을 쓰는 곳에선 곤충 개체 수와 서식종 수가 각각 7%와 5% 줄어드는 데 그쳤다. 반면, 집약농법이 쓰이는 곳의 곤충 개체 수와 서식종 수는 각각 63%와 61%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연구진은 “이와 별도로 농지와 방목장을 만들기 위해 자연 서식지를 파괴한 지역에선 기후변화가 심화하고 이상기온이 유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기후변화와 집약농업에 따른 서식지 파괴로 지구 곳곳의 곤충 생태계가 차례로 붕괴 위험에 몰렸다”고 경고했다.
연구진은 꽃가루를 옮겨 식물이 열매를 맺도록 하는 곤충의 역할 등을 고려할 때 이 같은 현상이 인간 건강과 식량 안보를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CNN은 집약농법과 기후변화의 상관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언급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의 최근호에 게재됐다.
● “꿀벌이 사라졌다”
국내에서는 올해 초 전국적으로 벌통 50만 개 이상, 100억 마리 가량의 꿀벌이 죽거나 사라져 관심이 집중됐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에서는 벌들이 밖에 나갔다가 못 돌아온 ‘월동 폐사’를 원인으로 분석했다. 일벌 무리가 돌아오지 않으면서 남은 여왕벌과 애벌레가 따라 죽는 벌집 군집 붕괴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날씨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개화 시기인 봄이 짧아져 벌들이 활동할 시간이 줄어든 데다 가을에는 저온현상으로 벌들이 많이 크지 못했다. 겨울잠에 들어간 벌들은 12월 고온현상으로 일찍 바깥에 나왔다가 체력을 잃고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꿀벌이 사라지면 꿀벌의 수분 활동으로 성장하는 농작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농작물 생산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아몬드나 당근, 양파 같은 작물은 꿀벌에 100% 의존하는 작물이다. 이 때문에 미 캘리포니아 아몬드 협회는 꿀벌 폐사 현상을 중대한 위기로 본다. 세계적인 환경단체 ‘어스워치’도 “대체 불가능한 생물 5종 가운데 꿀벌은 첫 번째 종”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 “우리의 유일한 집에 불을 지르고 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