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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에겐 생지옥”…인류 위협하는 ‘곤충겟돈’

입력 | 2022-04-21 13:50:00

동아DB


현대식 집약농법이 기후변화로 이어져 곤충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곤충 개체 수와 다양성 급감이 식량 안보를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제기했다. 국내에서도 올 초 100억 마리 꿀벌이 사라져 관심을 모았는데, 기후변화가 원인으로 꼽혔다.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곤충이 사라지는 ‘곤충겟돈’(곤충+아마겟돈)의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 네이처에 실린 ‘곤충 종말론’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연구진은 전 세계 6000개소의 토지이용 현황과 해당 지역에 서식하는 곤충 1만8000종의 개체 수가 최근 20년간 어떻게 변화했는지 분석했다고 20일(현지 시간) 미국 CNN방송이 보도했다.

연구 결과 기후변화와 현대적 집약농법 도입에 따른 서식지 파괴가 심한 지역에선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곤충 개체 수가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고, 서식하는 종의 수도 27%가량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현상은 열대지방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조사 지역 인근에 자연 서식지가 있으면 기후변화와 농업 활동이 곤충 생태계에 미치는 충격이 일부 상쇄됐지만, 대규모 개간과 화학비료, 살충제 등 현대 집약농법이 이뤄진 지역에선 이 같은 현상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서식지 파괴가 적은 구식 농법을 쓰는 곳에선 곤충 개체 수와 서식종 수가 각각 7%와 5% 줄어드는 데 그쳤다. 반면, 집약농법이 쓰이는 곳의 곤충 개체 수와 서식종 수는 각각 63%와 61%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연구진은 “이와 별도로 농지와 방목장을 만들기 위해 자연 서식지를 파괴한 지역에선 기후변화가 심화하고 이상기온이 유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기후변화와 집약농업에 따른 서식지 파괴로 지구 곳곳의 곤충 생태계가 차례로 붕괴 위험에 몰렸다”고 경고했다.

연구진은 꽃가루를 옮겨 식물이 열매를 맺도록 하는 곤충의 역할 등을 고려할 때 이 같은 현상이 인간 건강과 식량 안보를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CNN은 집약농법과 기후변화의 상관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언급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의 최근호에 게재됐다.


● “꿀벌이 사라졌다”


그동안 곤충 개체 수가 줄고 있다는 연구는 종종 있었다. 브래드퍼드 리스터 미 렌슬레어 폴리테크닉대 생물학 연구팀은 푸에르토리코 열대림에서 꾸준히 곤충과 거미를 잡았는데, 1977년과 2013년 사이 4분의 1에서 8분의 1로 중량이 준 것을 발견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019년 ‘곤충겟돈(곤충+아마겟돈)은 얼마나 현실적인가’라는 기사를 통해 곤충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을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곤충의 감소가 이들을 먹이로 삼는 척추동물 등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올해 초 전국적으로 벌통 50만 개 이상, 100억 마리 가량의 꿀벌이 죽거나 사라져 관심이 집중됐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에서는 벌들이 밖에 나갔다가 못 돌아온 ‘월동 폐사’를 원인으로 분석했다. 일벌 무리가 돌아오지 않으면서 남은 여왕벌과 애벌레가 따라 죽는 벌집 군집 붕괴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날씨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개화 시기인 봄이 짧아져 벌들이 활동할 시간이 줄어든 데다 가을에는 저온현상으로 벌들이 많이 크지 못했다. 겨울잠에 들어간 벌들은 12월 고온현상으로 일찍 바깥에 나왔다가 체력을 잃고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꿀벌이 사라지면 꿀벌의 수분 활동으로 성장하는 농작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농작물 생산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아몬드나 당근, 양파 같은 작물은 꿀벌에 100% 의존하는 작물이다. 이 때문에 미 캘리포니아 아몬드 협회는 꿀벌 폐사 현상을 중대한 위기로 본다. 세계적인 환경단체 ‘어스워치’도 “대체 불가능한 생물 5종 가운데 꿀벌은 첫 번째 종”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 “우리의 유일한 집에 불을 지르고 있다”


기후 위기 경고음이 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지금 즉시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근 유엔이 발표한 ‘정부 간 기후변화 협의체(IPCC)’ 보고서에는 이 같은 위기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기후변화의 영향이 심각해지고 있다”며 “오염원들이 우리의 유일한 집을 방화했다”고 했다. 또 “인류가 생존을 위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투자에 대한) 지연은 죽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원들은 기후 변화가 20년 전 과학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파괴적이고 광범위하다고 분석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