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공학자’가 본 가상세계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최근 메타버스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동시에 거품론도 만만치 않게 떠오르고 있다. 메타버스(Metaverse)는 흔히 현실과 혼합된 3차원 가상세계를 뜻하지만 좀더 큰 의미로는 디지털공간과 현실공간이 혼재된 신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인류는 스마트폰을 손에 쥔 뒤로 자연스레 디지털 신대륙으로 이동해버렸다. 이유는 ‘생존에 유리해서’였다. 이제 인류는 세계 최고의 쇼핑몰인 아마존, 세계 최대 방송국인 유튜브,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거래상점인 앱스토어 같은 디지털 세계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신대륙이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현실감이 강화된 새로운 세계로 진화하는 중이다.》
메타(옛 페이스북)의 메타버스 플랫폼 ‘허라이즌 월드’에서 한 아바타가 대화하는 모습. 허라이즌 월드는 자체 거래 가능한 가상화폐 ‘주커벅스’도 공개할 예정이다. 사진 출처 호라이즌 월드 홈페이지
기존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다른 메타버스 플랫폼의 매력은 무엇일까? 1995년 이후 태어난 Z세대는 스마트폰으로 지식을 흡수하며 세상에 대해 배웠고, 나아가 세계관을 형성했다. 인류는 어려서 게임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 50, 60대가 구슬치기, 딱지치기, 오징어게임을 하며 친구를 사귀고 사회를 배웠다면 이들은 마인크래프트, 로블록스, 포트나이트, 제페토 등 가상의 현실 속에서 자기를 대신하는 캐릭터를 바탕으로 게임을 즐기며 친구를 만나고 사회를 배웠다. 2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 상황도 메타버스 세계의 시계를 앞당겼다. 유튜브로 수업을 듣고, 좋아하는 가수의 아바타 공연을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감상하고, 아바타로 친구들과 쇼핑을 하면서 메타버스 속의 생활이 현실세계와 혼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메타버스 진화의 출발이다.
NFT는 블록체인을 이용한 소유권 등록 시스템이다. 디지털 아이템은 복제하면 완전히 똑같기 때문에 거래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NFT로 등록하는 순간 그 소유권을 보장할 수 있고 비로소 판매가 가능하다. 아파트의 등기권리증과 비슷하다. 이미 많은 디지털 아티스트들이 이러한 예술작품을 판매하고 있다. 작품 등록은 NFT로 하고 거래는 암호화폐인 이더리움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메타버스와 NFT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융합된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가 성장 중이다. Z세대 고객을 확보하고 싶은 많은 기업들이 제페토나 로블록스 같은 플랫폼에 샵을 열고 다양한 아이템을 광고하고 판매하더니 이제 NFT와 암호화폐를 활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하고 있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에 개설한 테마파크 ‘나이키랜드’에서 10대 아바타들이 소통하는 모습. 아바타들은 이곳에서 술래잡기 피구 등 게임을 즐기고 나이키의 가상 의상과 옷을 구매할 수도 있다. 아래 사진은 나이키가 지난해 인수한 패선 NFT스타트업 아티팩트(RTFKT)가 만든 아디다스 가상운동화. 사진 출처 나이키 홈페이지, RTFKT 홈페이지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특수 제작된 실물 신발도 보내준다. 이 모든 거래는 이더리움으로 이뤄진다. 나이키의 한정판 신발이 재판매 시장에서 500만 원 선에 거래되는 걸 생각하면 높은 가격에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아디다스는 NFT 마켓에서 크게 성공한 BAYC(Bored Ape Yacht Club·지루한 원숭이들의 요트클럽) 캐릭터를 구매하고 여기에 3만 개의 각기 다른 아디다스 옷과 모자 등을 입혀 NFT 아이템으로 개발해 판매했는데 무려 275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들 3만 명의 회원에게 특별 제작된 세계 유일의 모자, 옷, 신발을 보내준 것은 물론 앞으로도 다양한 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다. 메타버스와 NFT, 암호화폐가 제조기업과 만나 Z세대가 열광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 기업의 성공에 힘입어 삼성전자, 코카콜라, 스타벅스 등 수많은 기업들이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하고 있거나 추진 중이다. 이들의 목표도 TV광고를 아예 보지 않는 Z세대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다. 메타버스라는 신세계에서는 이처럼 모든 것이 연결되고 융합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중이다. 이 도전은 소비자의 참여에 의해 빠르게 성장하기도 또 퇴출되기도 한다. 이것이 진정한 메타버스 생태계의 진화현상이다.
웹툰의 인기도 폭발적이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웹툰 플랫폼은 세계 100개 국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같은 웹툰은 드라마로 제작되자마자 넷플릭스 세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e스포츠도 우리가 종주국이다. 그 많은 규제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세계적인 게임들을 출시하고 있고 세계최고 프로게이머도 연봉 100억을 훌쩍 넘은 페이커다. 또 네이버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 가입자 3억명 중 90%는 외국인이다.
그러고 보니 국경도 없고 언어장벽도 없는 메타버스 세상에서 세계의 MZ 세대들은 우리 문화를 만끽하며 강력한 팬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유튜브나 넷플릭스, 로블록스처럼 세계 최고로 성장한 글로벌 플랫폼은 찾기 힘들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가 미국처럼 연결하고 융합해서 새로운 걸 창조하고 도전하기보다 혹시 일어날 부작용을 규제하는 세계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암호화폐가 급성장하자 투기성과 자금세탁 가능성을 문제 삼아 바로 금지시켰다. 물론 부작용도 심각하지만 그 이면의 발전가능성은 무시된 측면이 크다. 메타버스 시장이 성장하자 ‘그건 해보니까 애들 게임이더라’하는 의견이 시장 전체를 덮어버렸다. NFT도 마찬가지다. 폭발적 성장이 일어나자 투기 가능성을 부각시키고 가격이 폭락하자 ‘드디어 거품이 빠지고 실체가 드러났다’는 의견이 사회를 지배한다. 사실 정확한 지적이다. 이 산업들의 성장에는 과도한 거품과 부작용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들이 융합하면 엄청난 신 시장 창출의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가 간과하는 메타버스 신세계의 숨겨진 반쪽이다. 미국은 이 위험성을 적절히 관리하며 새로운 시장의 지배자들을 차근차근 키우고 있을 뿐 아니라 나이키, 아디다스 같은 기존 글로벌 기업까지 참여시키며 생태계를 확대하고 있다.
이미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비슷한 경험을 했다. 유튜브, 아마존, 넷플릭스, 우버, 에어비앤비 등 새로운 플랫폼들이 등장할 때마다 부작용을 지적하고 성장가능성이 낮다고 무시해왔다. 심지어는 규제로 막아버렸다. 그 모든 지적들은 정확한 팩트였고 잘못된 내용도 없었다. 그런데 인류는 어이없게도 자발적 선택을 통해 이들을 세계적 플랫폼으로 성장시켰다. 지금 성장하는 메타버스 플랫폼도 비슷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부작용에 매몰돼 있다. 미래 변화에 대한 도전이 없다면 메타버스 세상에서 글로벌 플랫폼과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일은 요원하다.
나이키와 메타버스가 시도한 NFT 프로젝트도 부작용과 잠재력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시작된 도전이다. 그들은 도전한다. 그리고 또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세상을 바꾸고 있다. 물론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신문명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에 의해 성장한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메타버스는 놀라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만약 우리가 만들고 있는 메타버스 세상에서의 성공이 지금 세상을 위협하는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기회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스마트융합디자인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