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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단체 시위로 지하철 1시간 지연… “따릉이 출근” 지각 속출

입력 | 2022-04-22 03:00:00

열차 바닥 기어서 하차 방식 시위… 전장연, 지원예산 1조 증액등 요구
시민들 버스-택시정류장 몰려 혼잡, 학교 못가 중간고사 못본 대학생도
이준석 “시민출근 볼모… 중단하라”



출근길 지하철 운행 지연에… 버스정류장 몰린 시민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에서 열차 바닥을 기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위 사진). 이들의 시위로 2, 3호선 열차 운행이 35∼72분씩 지연되면서 출근길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아래 사진은 지하철 타기를 포기한 시민들이 버스 정류장으로 몰려 3호선 녹번역 인근 버스정류장에 길게 줄이 늘어선 모습.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뉴시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21일 오전 시위를 본격적으로 재개하면서 서울 지하철 2, 3호선 운행이 1시간 안팎씩 지연돼 적잖은 시민들이 출근길 불편을 겪었다.

전장연은 이날 오전 7시 반경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과 2호선 시청역에 정차한 열차에 오른 뒤 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을 기어 하차하는 방식으로 시위를 벌였다.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는 열차 바닥에 엎드린 채 “불편을 드려 죄송하지만 21년째 외치고 있는 우리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했다.

전장연은 △장애인 탈(脫)시설 자립 지원 시범예산 807억 원 편성 △활동 지원 예산 1조2000억 원 증액 △평생교육시설 예산 134억 원 편성과 관련 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벌여왔다. 지난달 29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장애인 예산 확보 요구를 전하고 이튿날부터 시위를 잠정 중단했으나 ‘장애인의 날’인 20일까지 인수위가 만족할 만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며 시위를 재개했다. 전장연 측은 “추경호 경제부총리 후보자가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한 입장 발표를 약속한다면 시위를 멈추겠다”고 했다.

주로 3, 4호선에서 시위를 벌였던 전장연은 이날 지하철 2호선에서도 시위를 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지난달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장연이) 순환선 2호선은 후폭풍이 두려워서 못 건드린다”고 말한 것을 감안한 것이다.

이날 시위로 출근길 2, 3호선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교통대란’을 겪었다. 이날 오전 지하철 3호선 상·하행선 운행은 각각 61분과 72분, 2호선 상·하행선은 각각 45분, 35분간 지연됐다. 열차 출발이 늦어지자 승객들 사이에선 고성이 터져 나왔고, 일부 시민은 욕설을 하고 침을 뱉기도 했다.

지하철 출근을 포기한 시민들이 몰리면서 인근 버스와 택시 정류장도 혼잡했다. 이날 오전 3호선 불광역 인근 버스 정류장은 평소와 달리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광화문으로 출근하는 김모 씨(40)는 “지각하지 않으려는 시민들이 종로행 강남행 버스에 타려고 밀려드는 모습이 좀비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김 씨는 “결국 버스 타는 것을 포기하고 공공자전거로 회사에 갔는데, 평소의 2배가 넘는 1시간 10분이 걸렸다”고 했다.

마침 대학 중간고사 기간과 겹치는 바람에 시험을 못 치른 학생도 있었다. 일부 대학 익명 커뮤니티에는 “최선을 다해 시험을 준비했는데 학교에 가지도 못했다” “시위 때문에 강의실에 늦게 도착했는데 지각 사유 인정이 가능한지 교수님께 문의한 상황” 등의 글이 올라왔다.

이날 시위에 대해 원일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수석부대변인은 “안타깝다”면서도 “장애인 단체와 관련된 분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경청하고 새 정부가 장애인 권익 보호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과제로 작성하는 것까지가 인수위의 역할”이라고 선을 그었다.

일부 장애인단체는 전장연의 시위 방식을 비판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와 한국교통장애인협회는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상식적 시위가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준석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런 식으로 2, 3호선을 멈춰 세우고 시민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 양태는 용납할 수 없다.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유채연 기자 ycy@donga.com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