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성장 ‘넷 포지티브’] 2부 기업, 함께하는 성장으로〈4〉중소 협력사 경쟁력 키운 LG
기존 생산 라인 근로자 5명이 제품 모델별로 인쇄회로기판(PCB) 어셈블리 조립도를 확인한 뒤 4∼6종의 부품을 직접 조립하고 불량 여부도 육안으로 확인하고 있다. 지금도 6개 생산 라인은 이렇게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에어컨 부품을 주로 만들다 보니 여름철을 앞두고는 몇 주 동안 공장을 풀가동해야 합니다. 주 70∼80시간씩 바짝 일해오던 시기죠. 곧 주 52시간제가 적용될 텐데 대안이 없어 정말 머리가 아팠습니다.”
18일 경남 창원시 자유무역지역 3공구에 위치한 에어컨 부품 제조사 엠에스이. 김유숙 엠에스이 대표는 2018년 당시의 막막했던 기억을 꺼내며 고개를 저었다. 직원 수가 150명가량인 이 회사는 2020년 1월부터 주 52시간제 적용을 받았다.
엠에스이의 주력 생산품은 ‘인쇄회로기판(PCB) 어셈블리’다. 전자제품 안에 들어가는 PCB는 녹색 플라스틱판에 회로가 그려진 부품이다.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PCB에 케이블 등 수십 개의 작은 전자 부품을 조립하는 게 이 회사의 일이다.
엠에스이의 사업은 성수기와 비수기의 구분이 뚜렷하다. 무더위를 앞두고 에어컨 구매 고객이 몰리는 4, 5월에는 겨울철 비수기보다 주문량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비수기 때는 주 40시간에 훨씬 못 미치게 일하던 직원들이 성수기가 되면 주 70∼80시간씩 일하는 게 매년 반복돼 왔다.
“워라밸(일과 개인 삶의 균형)에 대한 요구가 커진 상황에서 법적으로도 주 52시간제 도입이 예고돼 있었어요. 기존 방식으로는 사업을 계속할 수 없다는 위기를 느꼈죠.” 예전과는 다르게 직원들도 야근 수당을 더 챙기는 것보다는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하고 있었다.
김 대표의 선택은 자동화 생산라인 구축이었다. 마침 2018년 10월 LG전자가 지역 협력사를 대상으로 한 ‘스마트 팩토리 구축 세미나’를 열었다. 김 대표는 당장 달려가 LG전자에 도움을 요청했다.
LG전자는 이듬해 1월 실무자를 파견했다. 서치웅 H&A 협력사지원팀 책임은 일주일에 2, 3일씩 엠에스이를 찾아 스마트 팩토리 구축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피더 자동화 생산 라인에서는 피더(Feeder) 두 대가 사람이 하던 일을 모두 대체하고 불량 부품도 로봇 팔로 자동 폐기 처분한다. 3D 검사기 근로자 1명이 3차원(3D) 검사기를 활용해 모든 부품의 불량 여부를 확인하다.
우선 생산성이 높아졌다. 자동화 라인 하나가 전체 7개 생산 라인의 총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분의 1이나 된다. 결과적으로 전체 생산성도 34%가량 높아졌다는 게 엠에스이 측 설명이다. 수동으로 조립하는 것보다 순간 속도는 느렸지만 실수 없이 24시간 가동이 가능했고, 숙련자와 미숙련자 간 생산성 격차도 사라졌다.
두 번째로는 인력 운용에 숨통이 틔었다. 기존 라인에서는 부품 조립에만 4, 5명이 투입됐는데 자동화 라인에서는 작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는지 확인하는 직원 1명만 있으면 된다. 이 라인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나머지 6개 라인에 추가 투입될 수 있었다. 주 52시간제가 적용된 후에도 큰 문제없이 공장을 돌릴 수 있었던 배경이다.
세 번째는 불량 검출률이 크게 높아졌다는 점이다. 공정에서 발생하는 불량률이 43%나 개선됐다. 3차원(3D) 검사기는 물론이고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AI) 통계분석 기법을 적용한 부품측정검사기(ICT) 및 기능검사기(FCT) 덕분이다. 불량 검사를 거쳐 출고한 부품의 불량률은 제로(0)로 떨어졌다고 한다.
2014년 300억 원 규모였던 엠에스이의 매출은 자동화 라인 첫 단계가 설치된 2019년 633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2013∼2016년 기업회생 절차를 밟았던 기업이라곤 믿지 못할 정도의 괄목할 만한 성장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2020∼2021년 연매출 규모가 500억 원대로 줄었지만, 올해는 다시 600억 원대 회복을 확신하고 있다.
김 대표는 “기업이 외형적으로 성장한 것도 있지만 직원들의 근무 환경이 개선됐다는 게 더 기쁘다”고 했다. 서 책임도 “중소 협력사들의 생산성이 높아지면 곧 LG전자의 생산성도 높아지니 ‘윈윈’인 셈”이라고 말했다. 두 파트너는 자동화 라인 투자를 처음 결정했을 때 세운 두 가지 목표 ‘불량률 개선’과 ‘고용 유지’를 모두 달성한 게 무엇보다 만족스럽다고 했다.
창원=홍석호 기자 wi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