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훈의 政說] 정호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 논란 확산… 조기 레임덕 초래할 수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뉴스1
“어떤 부당한 행위도 없었으며 가능하지도 않았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4월 17일 기자회견에서 자녀 특혜 편입 의혹과 관련해 내놓은 해명이다. 정 후보자는 이틀 뒤인 19일 또다시 “단 한 건도 불법이거나 도덕적으로 부당한 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불법을 저지른 적이 없으니 자진 사퇴를 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거들고 나섰다. 윤 당선인은 정 후보자가 첫 해명을 내놓은 17일 참모진에게 “부정의 팩트가 확실히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법 증거가 없으니 문제가 없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국민, 법 이전에 상식으로 판단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내에서조차 인사검증시스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지만 번번이 무시된 채 넘어갔다. 그렇게 문 대통령이 내세운 ‘공정’이라는 가치는 빛을 잃어갔고, 마침내 정권교체를 당하고 말았다. 문 대통령이 놓친 것은 무엇일까. ‘상식(common sense)’이다. 국민은 ‘법 이전에 상식’으로 판단을 내린다. 일종의 경험칙(經驗則)이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상식을 중시한다. 문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이다. 변호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법의식(legal mind)’이다. 법의식은 상식과 거리가 있다. 윤 당선인도 검사 출신이다. 검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도 법의식이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이 공통된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대통령은 법조인이 아닌 정치인이다. 정치인에게는 법의식보다 상식이 중요하다. 이를 흔히 ‘국민 눈높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론조사로 나타나는 민심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정치인이 민심과 따로 논다면 스스로 묘혈을 파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통령 역시 국정수행 동력은 지지율로부터 나온다. 국민이 지지한다는 것은 정당성을 부여받는다는 의미다. 지지율이 낮아지면 당장 공직사회에 영(令)이 서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2년 차인 2019년 5월 11일 이런 일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정청 을지로 민생현안회의 자리에서 회의를 앞두고 당시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정부 관료가 말 덜 듣는 것, 이런 건 제가 다 해야…”라며 말을 꺼냈다. 그러자 김수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 “그건 해주세요. 진짜 저도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방송사 마이크가 꺼졌다 생각하고 나눈 비밀대화였다. 당시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2019년 5월 2주 차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47% 정도로 떨어진 상태였다.
한국갤럽이 4월 1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윤 당선인이 직무 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50%, ‘잘 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42%였다. 윤 당선인이 취임 후 5년간 국정을 잘 수행할 것으로 보는지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 57%가 ‘잘할 것’, 37%가 ‘잘 못할 것’이라고 응답했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p.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대통령에 취임하기도 전인데 벌써 문재인 정권 집권 2년 차와 유사한 지지율 수준에 맴돌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식보다 법의식을 중시하는 판단을 이어간다면 여론 추이가 어떻게 변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尹, 여론 감수성 키워야
조 전 장관은 2019년 9월 2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민 50% 이상이 반대한다면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퇴 용의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여론조사에 따라 거취를 결정하는 것은 고위공직자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법의식을 가진 법학자다운 답변이었다. 하지만 그 시점에 국민이 원한 대답은 아니었다.
이른바 ‘조국 사태’는 그나마 문재인 정권을 지탱하던 민심이 이탈하기 시작한 결정적 변곡점이었다. 이후 ‘조국 지키기’와 ‘윤석열 지키기’로 국론이 양분되면서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30%대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윤 당선인이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상식을 놓치고 있다는 점에서는 윤 당선인도 문 대통령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대목이다. 무엇보다 ‘여론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윤 당선인 역시 문 대통령과 같은 과오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수많은 총리 또는 장관 후보자가 여론이 악화하자 자진 사퇴의 길을 선택했다. 대부분 불법 행위 여부와 무관하게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아 그런 선택을 했다. 자진 사퇴를 하건, 거부하건 당장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지지율이 높은 상황이라면 조금 하락하더라도 감수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윤 당선인의 현실은 어떤가. 현 수준에서 5~10%p만 빠져도 국정수행 동력이 떨어질 지경인 지지율을 근근이 유지하는 형국이다. 지지율이 조금만 떨어지면 곧바로 낭떠러지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기 레임덕으로 갈 수도 있는 분수령에 벌써부터 서 있다고 봐야 한다. 정 후보자 문제를 절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정치학 박사
〈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36호에 실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