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광석-유연탄 가격 급등하자 철강업계 “가격 인상 더 못미뤄” 車업계는 15만원 인상 합의한듯 조선사 “선박가격에 반영 어려워 막대한 영업손실 불가피” 반발
선박용 후판 등 철강 제품 가격 인상을 놓고 국내 조선사와 철강업체들 간 줄다리기가 장기화하고 있다. 철강업계는 철광석이나 석탄 등 원자재 가격 폭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조선사들은 과도한 인상률을 적용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24일 조선업계와 철강업계에 따르면 양측은 올해 상반기(1∼6월) 선박용 후판을 포함한 철강 제품 가격을 놓고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조선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평균 t당 10만 원 이상 인상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철강제품 가격 협상은 통상 1년에 두 차례 이뤄진다. 올해는 인상 여부를 놓고 양측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상반기 적용할 가격 협상이 지연됐다. 가격이 결정되면 조선사들은 이전 거래된 제품에 대해서도 소급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상승 폭에 따라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선박용 후판은 두께 6mm 이상인 제품을 말한다. 통상 선박 제조 원가의 약 20%를 차지한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3사가 공시한 후판 가격은 2020년 t당 평균 68만 원이었으나 지난해에는 114만 원으로 올랐다. 여기에 이달 중순 국내 시장에서 유통되는 후판 가격은 t당 140만 원으로 뛰어올랐다. 1년여 만에 2배 이상으로 오른 셈이다.
반면 조선사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후판 가격을 급격히 올리면 실적에 직격탄을 맞게 된다. 조선사들은 통상 선박을 수주할 때 후판 등 자재 가격을 계약 시점 기준으로 계산한다. 2년여의 선박 건조 기간 동안 후판 가격이 올라도 선박 가격에 반영하기 힘들다. 후판 가격 인상분만큼 비용을 떠안는 구조라는 얘기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이달 후판 가격이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국내 조선소의 수익이 크게 악화됐다. 후판 가격 인상분을 공사손실충당금에 반영하면 회계상 영업손실이 4조4000억 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대중공업그룹 조선부문 중간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의 경우 지난해 원자재 가격 인상에 대한 충당금 8900억 원을 책정하면서 영업손실 규모가 1조3848억 원까지 불어났다. 국내 조선사들의 후판 수요는 약 430만 t으로 추정되는데, 후판 가격이 t당 10만 원 오르면 약 4300억 원의 비용이 추가된다. 여기에 협력사들이 후판을 이용해 제작한 제품의 납품가도 오르는 만큼 협력사에 지급해야 하는 비용 부담도 커지게 된다.
조선업계에서는 지난해 포스코가 9조 원대 영업이익을 내는 등 철강업계 실적이 고공행진을 한 만큼 올해는 후판 가격을 동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도 내놓고 있다. 후판 가격 상승은 조선업체는 물론이고 후방 협력업체들에도 동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철강업계는 최근 조선 3사가 잇달아 대형 프로젝트들을 수주하고 있어 대응 여력이 충분하다고 맞서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최근 원자재 가격 흐름을 살펴보더라도 인상은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