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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치의 지혜’ 보여야 할 디지털 플랫폼 정부[정우성의 미래과학 엿보기]

입력 | 2022-04-25 03:00:00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솔로몬. 지혜로운 왕이다. 한 명의 아이를 놓고 다투는 두 여인에게 아이를 반으로 나누어 가지라는 판결을 내린다. 아이의 죽음을 볼 수 없는 진짜 엄마를 가려낸 판결이다. 하나의 생명을 여럿으로 나눌 수는 없다. 하나둘 딱 떨어지게 세는 것을 이산(離散)적이라고 한다. 이와 대비되는 개념은 중간이 존재하는, 연속적인 수이다. 디지털은 이산적이다. 과거에는 TV의 소리 크기를 조절할 때 다이얼을 돌렸다. 보다 세밀한 조절이 되는 아날로그였다. 지금은 소리의 크기가 하나의 숫자로 표현된다. 단계별 조절의 디지털이다. 라디오의 FM 주파수도 다이얼을 돌리지 않고 정확한 숫자를 입력하는 디지털 시대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지난해 12월 블로그 글을 통해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만들어 대국민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한편 청년들의 국정 운영 참여를 이끌겠다고 밝혔다. 사진 출처 윤석열 당선인 블로그

요즘 디지털 플랫폼 정부가 관심을 받고 있다. 혹자는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바뀌고, 인터넷이나 메타버스에 만들어지는 정부를 떠올린다. 하지만 핵심은 정부의 역할 변화에 두어야 한다. 과거에는 정부가 많은 것을 주도했다. 정부는 모든 정보를 갖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옳은 선택을 하는 완벽한 존재로 여겨졌다. 불가능한 이야기다. 세상은 더욱 복잡해지고 정보는 더욱 많아졌다. 정부의 정보도 완전하지 않으며, 틀린 경우도 많다. 완벽한 선택은 애당초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많은 의견을 듣고 정보를 모아야 한다. 국민과 전문가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완벽한 선택보다는 보다 합리적이며 최선인 선택이 요구된다. 과거 국민을 통치하는 정부(거번먼트)가 국민과 정부가 함께 협치하는 거버넌스로 바뀌는 과정이다.

어떤 이는 디지털 세상에서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정부를 떠올리기도 한다. 모든 생활이 한순간도 빠짐없이 디지털에 기록되니, 자연스러운 걱정이다. 나쁜 생각을 갖고 기록을 지우거나 위·변조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개발한다. 기술의 부작용을 다른 기술로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기술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자칫하면 더욱 무서운 기술만 계속 만들어낼 뿐이다. 명확한 철학과 방향이 있고, 이에 따른 실행이 함께해야 한다. 디지털 세상의 위험은 수많은 공상과학영화에서 지적했다. 특히 우리는 독재와 감시라는 아픈 과거의 기억 탓에 더욱 큰 두려움을 느낀다. 그렇기에 기술 발전에 더하여 사회와 정부의 역할 변화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민이 정부의 디지털을 접하는 관문은 주로 행정 서비스이다. 몇 년간 국민의 불편을 줄이려는 노력이 있었다. 공인인증서를 없애고, 행정서류를 하나의 홈페이지에서 모두 발급받을 수 있도록 했다. 어떤 컴퓨터를 사용하더라도 동일한 서비스가 가능한 시스템도 개발했다. 정부의 홈페이지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건 좋은 일이다.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공짜로 접할 수 있다. 꽤 편리한 세상이다. 과연 이런 것이 디지털 플랫폼 정부의 전부일까?

지나치게 친절한 공공 서비스는 산업의 활성화를 막기도 한다. 가령 날씨정보는 기상청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다. 이곳에서 날씨에 관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굳이 민간 기상 서비스 회사의 홈페이지를 방문할 필요가 없다. 결국 민간 회사는 수익을 낼 수 없고, 관련 산업은 성장하지 못한다. 우산장수와 짚신장수를 아들로 둔 어머니가 필요로 했던 내일의 날씨는, 민간 회사들이 유통업계에 제공하는 소중한 맞춤형 날씨경영 정보이다. 드론으로 더욱 다양한 기상정보를 모으는 것과 같은 일도 기상 산업에서 맡을 부분이 많다.

법률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쉽게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공익 서비스는 확대되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서비스가 공공에서 이루어진다면 다양한 법률 산업 역시 클 수 없다. 민간이 사라지고 정부만이 정보를 모으고 관리하는 것이야말로 영화에서 보던 위험한 통제이다. 전문성 역시 담보하기 어렵다. 협치의 시대에 통치의 패러다임이 여전하다.

디지털 플랫폼은 우리 일상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다. 플랫폼 기업이 택시와 배달 시장을 지배하고 극장 대신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세다. 이런 디지털 플랫폼은 정부의 행정 서비스로 확장되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디지털 플랫폼은 이미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스마트폰을 하루 종일 사용한다. 플랫폼 기업이 택시와 배달 시장을 지배하고, 극장 대신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세이다. 이들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하며 모이는 데이터는 어디에 쓰일까? 보다 나은 서비스 개발에 활용되어 우리에게 편리함을 준다. 다른 측면도 있다. 화면을 하루 종일 보는 것은 일종의 중독이다. 한두 가지의 서비스에 매몰되는 것 역시 중독이다. 데이터로 파악한 우리의 생활은 보다 철저한 중독을 유발하는 데 활용된다. 기업들은 계속해서 화면을 바라보게 만든다. 돈이 떨어져야 멈추는 도박처럼 스마트폰 역시 배터리가 다 되어야 사용을 멈춘다. 물론 보조 배터리가 있다면 영원히 잠들지 않는 중독도 가능하다.

편안함을 위한 디지털 기술이 정보의 독점과 악용으로 이어지면 그 파급력은 상상하기 어렵다. 글로벌 기업이나 정부 모두 달콤한 유혹에 빠지기 쉽다. 또한 우리가 그리는 미래는 단지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기술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디지털 세상이 아니다. 연속적인 아날로그에서 이산적인 디지털로의 전환은 사회 전체의 대변혁이었다. 이제부터의 변화는 정부 주도의 일방통행에서 모두가 함께하는 네트워크형 사회로 바뀌는 것이다. 통치가 협치로 바뀌는 패러다임 대변혁이다.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디지털 플랫폼 정부. 보다 많은 정보를 모으고 중요한 정보를 뽑아내며, 여기에 사람들의 전문성을 결합한다. 협치의 과정을 거친 보다 나은 결정으로 사회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솔로몬의 지혜가 요구된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